<와치독은 이 날도 도살장 하나를 없앴다> 어떤 부류는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어떤 부류는 배제되어 고통스럽게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습니다. 옛날부터 그랬습니다.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노하시며,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코 복음, 1장 40~41절)
학자들에 따르면, 원래는 ‘분노하시며’였는데 필경사가 이전 성경을 옮겨 쓰면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병환자를 배제하는 부정의한 체제에 대해 예수님은 분노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 상황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든, 예수님이 고통받는 이들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는 기사는 다른 상황에서도 여러 번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로 번역되는 헬라어 성경의 ‘스플랑크니조마이’는 명사 ‘스플랑크논’에서 나왔습니다. ‘스플랑크논’은 인간의 장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말에서도 ‘애끊다’라는 식으로 장기를 통해 감정이 내면 깊숙이에 근거함을 표현합니다. 스플랑크니조마이는 예수님이 느낀 연민의 깊이를 드러내는 말입니다.
부당하게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 깊어지면 분노에 이르에 됩니다. 분노는 고통을 가하는 자들과의 싸움을 지시하는데, 싸우는 사람은 위험에 노출되게 됩니다. 얕은 연민으로는 진실된 분노에 이르지 못합니다. 부당하게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마음이 자신의 안전에 대한 욕구를 넘어설 때 진실된 분노에 이르게 됩니다.
‘동물을 위함’이라는 명목 아래 여러 종류의 무리들이 있습니다. 와치독은 분노한 무리입니다. 늘 학대받는 동물곁으로 가서 진실로 분노하는 무리입니다. 학대자 및 학대를 유지하는 이 체제와 싸워 학대시설을 폐쇄하고 학대자의 손에서 동물을 떼어 내어야만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무리입니다.
와치독에 합류해 주십시오. 분노와 싸움을 키워, 동물학대를 유지하는 이 체제를 전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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