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겔 로스펠스 | 이한중 역 | 지호 | 2003.08.30
동물원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 책은 프란츠 카프카의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철창 우리를 걷어낸 하겐베크 동물원의 역사를 통해 과학, 오락, 교육과 “노아의 방주”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현대 동물원의 기원과 동물원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귀족들의 부와 명성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던 미네저리에서 이국적인 동물들과 사람들의 새로움을 만나는 동물공원으로, 천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만드는 서커스에서 종의 보존을 위해 노력하는 현대 동물원까지의 역사를 통해 ‘동물들’과 자신과 다르게생긴 ‘사람들’을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찰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사람을 전시한다는 발상과 새끼 코끼리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무리를 몰살시키는 수치스런 역사까지 만나게 된다. 아기코끼리 점보는 그런 과정을 거쳐 아이들의 영웅이 되었고 우리는 그런 동물들을 동물원에서 웃으며 만난다.
동물들의 생활이 “원 서식지”에서가 아니라 박물관, 서커스, 동물원 같은 인간의 환경에 있다는 동물들의 “비자연적인 역사”는 적어도 동물에 대한 자연사만큼 중요시 되어야 한다. 인간이 바라보는 어느 동물의 “실제”와 이 동물은 이렇다는 사람들의 “생각”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결국 한 동물이나 종들은 다른 그 무엇만큼이나 여러 생각들의 (고약하다, 고귀하다, 지적이다, 잔인하다, 용감하다 등) 집합체인 것이다. 역사가 그러하듯 각 세대는 나름의 동물 개념을 새로이 만들어낸다. 그래서 동물들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기초적인 수준에서 동물원이 동물이 아닌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잘 꾸며놓은 몇몇 동물원에 가 보면, 우리는 근본적이면서도 압도적인 인간적 속성을 감추기 위해 설계된 환경에 빠지고 만다. 현대 동물원 전시의 이면에는 상당한 재정 문제가 있고, 동물들이 보다 자연적인 환경 속에서 지낼 수 있도록 장려하는 울타리에는 분명히 교육적인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전시하는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이론의 여지없이 미학적인 것이다. 동물원은 인간의 보는 즐거움을 위한 곳이다.
제인 구달 박사는 사랑과 동정심으로 동물의 보호를 주장하는 동물 보호론자들과는 달리 현실적인 이유로 동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질병 같은 인간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유인원들을 알아야 하고 지구상에서 그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미 ‘인간만의 동물원’, ‘인간만을 위한 동물원’에 대해 비판할 기회를 잃었다. 현대 동물원은 더 이상 원 서식지에서 생존해 나갈 수 없는 종들을 위한 ‘노아의 방주’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장소가 되었다. 현대 동물원은 생태동물원으로서의 탈바꿈에 모두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동물원들이 동물들을 위한 곳이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고에 있다. 이 책은 생태동물원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나가고 있는 현대동물원들에게 아스팔트 바닥을 흙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쇠창살을 걷어내고 해자를 두르는 것만으로는 진정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동물원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현대 동물원의 아버지 또는 동물 사냥꾼, 칼 하겐베크
1848년 생선 중개상이었던 칼 하겐베크의 아버지, 클라우스 고트프리트 칼 하겐베크가 상어그물에 우연히 걸린 물개 여섯 마리를 ‘인어’라 표현하며 전시해 기대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에서 시작된 하겐베크 동물원(독일 함부르크 슈텔링겐)은 이제 세계적 수준의 잘 알려진 동물원이 되었다. 오늘날, 하겐베크 동물원은 수많은 볼거리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원으로 알려져 있다.
칼 하겐베크 Carl Hagenbeck (1844. 6. 10~1913. 4. 14)는 현대 동물원의 아버지라 불린다.
구하기 쉽지 않은 이국 동물들의 포획에 성공하면서 ‘하겐베크라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독일 학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그린란드와 태평양 군도의 원주민들을 전시해, 학자들의 학문적 욕구와 대중의 관심에 화답했다. 그는 함부르크 근처의 슈텔링겐에 동물원을 개장했는데, 이곳에서는 동물들을 철책우리 대신 해자를 만들어 관람객의 관점에서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구분 없이 공존하는 파노라마 형태의 배경을 만들었다. 이러한 동물원은 그 이후에 만들어진 야외동물원의 원형이 되었다.
하겐베크의 동물 거래, 하겐베크의 사람 전시, 하겐베크의 서커스, 하겐베크의 동물공원은 독일의 식민지지배, 함부르크의 상업적 힘, 인류학/인종학/생물학의 제국주의적 힘, 감금에 대한 미학적 해결 등의 한 표현만으로 압축하기는 어렵다. 그가 의도했던 것은 동물이 살던 실제 환경을 만들어 동물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실제처럼 어울려 보이는 배경 속에 동물들과 토속 원주민들을 집어넣어 ‘인간과 동물이 자연상태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환상을 관람객들에게 제공하려던 것이었다.
[인터파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