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에도 어김없이 멧돼지 출몰에 대한 기사가 자주 나고 있고 환경부와 지자체는 멧돼지 개체수를 조절하겠다며 엽사들을 동원하여 사살하기로 했다고 한다. 매 해 수백명의 엽사들이 각 지자체들에 동원되어 대대적인 포획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포획 포상금까지 지급되고 있다. 순환 수렵장을 설치하여 사살하는 멧돼지의 수도 해마다 늘어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제는 멧돼지가 수 킬로미터 이상을 헤엄쳐 섬에까지 가서 농작물을 망친다며 섬에서조차 마구잡이 살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듯 멧돼지를 잡아 죽이지 못해 온 나라가 안달이 난 모양새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디 멧돼지 뿐이던가? 지자체에서는 유해야생동물 방지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농작물 피해를 방지하겠다는 명분으로 야생동물을 무차별 죽이는 짓을 서슴지 않고 있다.
멧돼지의 개체수는, 야생동물의 개체수는 과연 급증하고 있는가?
그러나 우리는 멧돼지의 수가,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과연 급증하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자칫하여 무차별 포획이 십 수 년 간 지속됐을 때 어리석게도 멸종위기로 치 닫을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환경부에서 발표하는 멧돼지 개체수의 증가는 순수한 개체수라기 보다 밀도수임을 알 수 있다. 개발과 먹이 부족으로 밀린 멧돼지들의 일시적 출몰로 따진 밀도수에 불과한 것이다. 어쨌든 밀도수는 증가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근본 원인부터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천적의 멸종과 왕성한 번식력으로 멧돼지의 개체수가 많아진 것인지, 개발행위의 증가로 인해 서식지가 줄고, 겨울철 먹이 부족으로 인해 인간 가까이 내려와 자주 목격되는 것인지를 먼저 살펴야 그에 대한 적절하고 효과적인, 그리고 지속가능한 대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체수 조절의 방식, 다시 고민해야
생태계가 파괴될 만큼 멧돼지의 개체수가 많고 그 피해가 인간에게 직결되고 있다면, 반드시 해결책은 있어야 하며 그 개체수를 인간이 당분간 조절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정확한 개체수에 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며, 문제에 대한 올바른 원인분석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민원의 진정성도 조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전제조건 없이 단순히 일부의 피해사례를 확대해석하고 그에 대한 방식이 무분별한 사냥으로 흐르고 사냥이라는 간편한 방법이 개체수 조절의 절대적 방법인 양, 쉽사리 대중들의, 그리고 책임자들의 의식 속에 각인되는 것은 심각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반드시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개입하되, 그것은 인도적인 방법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여 생명을 대하는 것에 있어 좀 더 깊이 있는 고민과 정확한 실태와 원인분석에 대한 조사와 결론이 현재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잡아 죽이는 방법을 정례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차별 살상, 결국 멸종으로 이어져
또한, 공존의 대안으로 사냥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중심이 된 과거 정책들은 인간에게 피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모든 동물들에 대해 사냥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고 그 후 야생동물들은 공존이 아닌 멸종으로 치닫고 있으며 이는 생태계 파괴의 주 원인이다. 인간을 공격할 수 있는 호랑이와 늑대는 일제시대 무분별한 남획으로 한반도에서 모두 사라졌다. 야생동물 논픽션 작가 엔도 기미오는 한국의 호랑이 멸종이 일본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조선총독부는 한국의 산간오지까지 개발하기 위해 호랑이를 방해되는 동물로 여기고 주민을 동원해 매년 호랑이를 포함한 맹수를 사냥했습니다. 일본인으로서 한국의 호랑이가 멸종된 것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수년 전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호랑이의 삶, 인간의 삶,-호랑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라는 전문가들의 자성적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김동진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나 이 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 일본작가 엔도 기미오 모두 하나같이 무분별하게 맹수를 사냥한 것이 멸종의 원인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인간이 중심이 된 과거 민본주의가 맹수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이어졌고 호랑이를 제거하기 위한 국가차원의 노력이 모두 인간에게 우월한 지위를 갖게 함으로써 깨져버렸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인간과 호랑이가 모두 균형적인 공존을 이루었다는 것, 동물의 터전에 접근하지 않았던 때와 달리 조선시대부터 호랑이는 산간지역까지 개발하고 있는 농민들을 위해 ‘악수(惡獸)’로 규정되어 포획이 성행했고 이후로도 국가차원에서 포상제도까지 시행했다. 논픽션작가이자 일본 야조회(野鳥會) 명예회장인 엔도 기미오는 ‘한반도의 호랑이는 왜 사라졌을까’라는 논문에서 “일제 때 조선총독부는 경찰과 헌병들이 수천명의 주민을 동원해 호랑이를 사냥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당시 총독부 자료에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호랑이 97마리, 표범 624마리가 포획됐다고 적고 있다.
수십 년 후 우리는 위와 같이, 그때는 멧돼지 멸종 연구 결과를 접하게 되지 않을까? 멧돼지들도 마찬가지 신세가 될 듯하다. 맷돼지가 야생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버렸지만 환경파괴와 사람들의 채집행위로 인해 먹을 것과 은신처는 더욱 없어졌다. 길 따라 먹이 따라 내려와 인간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는 폭군으로 낙인찍혀 무차별 사살을 당하고 있다. 멧돼지는 설 곳이 없다. 여기도 저기도 갈 곳이 없으니 이제 멧돼지 멸종은 멀지 않았다.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재고되어야.
자! 그렇다면 멸종된 멧돼지 대신 그 뒤를 이을 동물은 또 누구던가? 호랑이와 표범이 멸종되었고, 늑대와 여우가 멸종되었다. 이제 멧돼지와 고라니가 멸종될 차례인가? 그 다음은 누구 차례인가? 그리고 그 멸종은 그들의 멸종으로만 끝나는 것일까? 정확한 연구조사와 대책 없이 <포확하여 죽이자>라는 결론은 언제나 또 다른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것이고, 새롭고 전혀 예상 못한 생태계 파괴에 대한 결과는 고스란히 농민들이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정부의 대책 없는 정책으로 인해 죄 없는 약자인 두 양자 – 동물과 농민들 – 만 언제나 피해대상이다.
과거에도 그렇듯 정부는 동물들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고민 없는 정책으로 피해 입는 것이 어디 동물문제만이던가? 정부는 정책을 연구 없이 내서도 안 되고 국민은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그러한 정책으로 호혜를 누릴 자가 누구인지, 그러한 사람들에 의해 개체수나 피해가 과장되거나 대책과 방법이 결정되지는 않았는지 (동물권 단체 케어로는 야생동물보호단체의 전신인 수렵협회 회원들이 수렵허가를 받아 사냥을 즐기기 위해 허위 민원을 넣는다는 제보를 받고 있다) 또 지속가능한 방식인지, 인간에게, 자연에게 또 다른 피해가 야기되지 않는지도 면밀히 조사해 볼 일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자. 미리 자성의 목소리를 거울삼아 주의를 기울이고, 현재를 재설계해야 할 것이다. 조금만 깊이 있게 멧돼지 문제를 생각했다면 무분별한 포획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음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십수년간 AI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식이 동물들의 살처분으로만 진행됐지만 AI 바이러스는 전혀 방제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는 동물을 죽이는 방식은 자연의 질서에도 위배될 뿐만 아니라 더 나쁜 자연폐해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결과이다 .
다른 생명체가 나와 같음을, 이 세상이 하나의 연결고리라는 세상의 단순한 진리를 잊지 말자. 이 세상은 인간만의 것은 아니며 행복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야생동물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방식에 동의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