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동 봉제산.
이젠 이 이름이 제겐 애증으로 다가옵니다.
작년 여름, 끔찍한 환경에서 동물사랑실천협회(CARE)가 대대적인 구조 활동을 펼친 후 산개가 되어 버린 남은 유기견들을 구조하기 위해 다시 방문한 것만 4차례.
그 중 여아가 새끼를 낳았고 그 아이들은 모두 다 커서 봉제산 유기견은 6마리가 되었습니다.
지난 번 또 새끼를 낳은 어미와 새끼들을 구조 시도하면서 결국 어미는 구조 실패하고 새끼들만 데리고 온 적이 있었지요. 영하 18도의 혹한에서 살아남은 네 마리의 아가들은 모두 입양을 가서 잘 살고 있답니다.
새끼를 데리고 온 것이 마음의 문을 닫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되어서, 이제 그 아이들은 밥주는 아주머니 근처에도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봉제산에서의 구조요청.
다른 방향입니다. 큰 산이라 등산객도 많고 등산로가 여러 갈래인데요,
아파트가 밀집해 있고 등산객들이 자주 다니는 통로에 황구 한 마리가 터를 잡았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듯, 옷도 입고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황구는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 걸고 아무에게도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채, 서서히 들개가 되어 갔답니다…
겨울부터 벼르다가, 수개월간 이 아이에게 밥을 챙겨주시는 아주머니 두 분께는 마음을 열게 되었다는 황구의 소식에 봉제산으로 달려갔습니다. 절뚝절뚝~~
1차 시도.
헉헉대며 올라온 길. 왼쪽 통나무 아래가 황구가 자리잡고 사는 터전이라고 합니다.
경계없고 순한 개라고 하여 이 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없이 목줄 들고 다가갔습니다.
출산 후 아주머니들께서 밥을 워낙 잘 챙겨주셔서 영양 상태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꼬리 내리고 있는 것 보이시지요? 순한 것과 경계와는 함수 관계가 없다는…ㅠㅠ
절 몹시 경계했습니다.
…………………..흠, 이렇게 옆에서 밥은 먹고 있으나, 제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도망간다는;;;
돌부처처럼 쪼그리고 앉아 고민에 빠진 저.
간식으로 유혹. 먹고 싶지? 이리루 와봐.
<됐거든…네 몸에서 개장수의 냄새가 나.>
황구는 제 냄새를 킁킁 맡더니 바로 몸을 뒤로 빼더군요.
바로 전날 앨라 구조 때문에 온몸에서 개냄새가 날 터…..들어는 봤니, 여자 개장수. ㅠㅠㅠ
결국 경계가 심해 다른 준비를 갖춰서 다시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순하고 바로 근처 와서 밥을 먹는다는 말에 목줄만 달랑 갖고 갔거든요.
허선주님과 터덜터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이 구조가 실패한 덕에 시간이 남아 예삐도 구조하고 동대문 나비 구조에도 참여할 수 있었어요.^^
발꾸락은 팅팅 부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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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2차 시도.
찍사 : 허선주님. (다시 동행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왼쪽의 아리따운 여인은 우리 구조 활동가이신 부슬비 간사님. 외모와 몸매가 국보급이라 잘 지켜드려야 함.
대표님 배현숙님에 이어 젓가락 여인이 또 등장. …슬프고 외로움…ㅠㅠ
오른쪽 분은 황구의 안전을 계속 챙겨주시던 아주머니 중 한 분이신 이영란님.
내 만반의 준비를 해왔노라.
수면제와 안정제를 섞어 맛있는 음식에 잇빠~~~이 타고,
두 아주머니 외에는 절대 터치를 허락하지 않는 황구의 목에 초크체인을 어떻게 거셔야 하는지 설명드리는 중.
황구는 이틀째 굶은 상황.
구조의 일등공신이셨던 이영란님. 이 녀석, 뭔가 이상한 거 눈치채고는 절대 그릇의 음식을 먹지 않더군요.
그래서 이영란님께서 음식물을 입으로 넣어주면서 제가 기회보아 초크체인을 거는 시도를 했는데 실패.
화가 잔뜩 난 황구, 한참을 절 잡아먹을 듯이 짖더니 바로 줄행랑.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이 까칠한 아줌마야….어디까지 갈 건데.
잠시 가출한 황구를 기다리는 동안 아가들 구경.
아 기다림도 즐겁게 만들어주는 이 귀여운 것들!!
작은 누렁이를 안고 계시는 분은 수개월간 이 아이들의 밥을 매일같이 챙겨주신 아주머니이십니다.
이 날 얼마나 우셨는지…
아빠가 무슨 색깔인지 알겠어~
새끼가 걱정되어 다시 돌아온 황구. 마지막 남은 수면제를 우유에 타서 먹이는 데 성공,
30여분 간의 실랑이 끝에 결국 이영란님께서 비틀대는 황구의 목에 초크체인을 거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황구는 계속 자신의 터를 바라보았습니다.
남은 새끼를 안고 오고 있는 아주머니들과 함께 가고 싶어서 말이예요..
누리가 유일하게 마음의 빗장을 풀고 다가갔던 두 분. 그분들과의 동행길.
이 산이 네게 위험하지만 않다면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이 곳에서 살아도 좋을 텐데…
미안하다, 누리야. 다른 사람들을 우리가 믿지 못해서, 네게 평온한 환경을 약속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
약기운에 힘들어하던 누리, 다행히 약과 우유를 모두 토해내었어요.
약을 먹여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똑똑하게 뱉어내줘서 고맙구나.
이영란님께 붙어 꼭 의지하고 있는 누리.
쉬다 걷고 또 쉬다 걷고 하며 산을 내려왔어요.
기운없는 상태라 안아서 차로 이동. 막상 잡히니 이렇게 순하고 예쁜 아이였네요.
누리의 아가들(도레미 삼형제)과 함께 보호소로 출발하였습니다.
보호소까지 부슬비님이 운전하여 먼 길 이동해 주셨습니다.
나중에 보니 허선주님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사진을 찍고 계셨더군요.
맞아요….왜 우시는지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 마음 저도 잘 알아요.
아직 누리는 보호소에서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애정어린 손길과 관심이 필요한 아이입니다.
보호소보다는 빨리 가정으로 가서, 주인에게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게 하고 싶습니다.
봉제산에서 갖은 위험을 피해가며 살아남은 이 아이들에게 품을 내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구조에 도움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동물사랑실천협회 www.fromcar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