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 슬레이터| 조증열 역| 에코의서재| 2005.07.20
강간 살인을 목격한 38명의 증인들은 왜 신고조차 하지 않았나?’
1964년 3월 13일 새벽 세시. 뉴욕에서 아주 끔찍한 범죄가 발생했다. 제노비스라는 20대 후반의 한 여성이 집 앞 도로에서 칼로 난자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것이다. 범인은 어떤 동기나 이유도 없이 이 여성의 목과 성기를 칼로 난자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소리치며 도움을 요청했다. 비명소리에 도로 옆 아파트 창문에는 하나 둘씩 불이 켜졌다.
이렇게 해서 당시 이 잔혹한 살인의 광경을 자신들의 집 창가에서 직접 목격한 증인들은 모두 서른 여덟 명이었다.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곧 수사가 시작되자 사건 자체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그녀가 칼로 온몸이 난자 당하는 동안, 그리고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터뜨렸을 그 끔찍한 비명소리를 들으면서도 서른 여덟 명의 목격자들 모두가 그 광경을 철저히 외면해 버렸다는 것이다. 도움을 주기는커녕 그녀가 완전히 절명할 때까지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 날의 목격자들은 자신의 신변에 직접적인 위협이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목격자들의 기이한 행동을 해석하기 위해 두 명의 심리학자는 곧바로 조사를 시작했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인간 본성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었던 20세기의 가장 놀라운 심리실험과 그 연구 결과를 정리하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이 책의 저자는 20세기 심리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천재적인 심리학자, 정신의학자 10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인간 심리와 본성에 관한 대담한 가설과 이론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을 흥미진진한 심리학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 책에 소개된 심리 실험들은 대개 처음에는 작은 의문점으로부터 출발했다. 지성과 교양을 갖췄던 나치 정권의 독일 장교들은 어떤 이유로 히틀러의 비이성적이고 잔인한 명령에 복종했을까?(3장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 사람들은 왜 20달러를 주었을 때보다 1달러를 주었을 때 설득이 더 잘 되는가?(5장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연구) 가난한 사람이 부자에 비해 약물 중독에 잘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7장 브루스 알렉산더의 마약중독 실험) 인간의 기억은 왜 선택적으로 저장되는가?(9장 에릭 칸델의 기억 실험)…. 의문은 이렇게 사소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었으나 사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을 묻는 대담한 질문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 간단한 질문들은 인간의 심리와 행동 사이의 인과 관계를 밝혀내는 중대한 실험이 되었으며, 나아가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접근해 가는 위대한 도전이 되었다
인간에 대한 기존 개념을 180도 뒤엎는 위대한 실험 10가지
저자는 인간의 행동은 보상과 처벌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최초로 증명한 스키너의 실험을 시작으로 심리학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논쟁적이었던 10가지 실험들을 펼쳐 보인다. 사람에게 가혹 행위를 시켰을 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실험한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 군중 속에 있을 때 개인의 책임 의식이 개체 수만큼 분산된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한 달리와 라타네의 방관자 효과 연구, 유아기의 원숭이가 먹이를 주는 어미보다 포근하게 안아주는 어미에게 더 큰 모성애를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스킨십이 사랑에 미치는 지대한 힘을 최초로 증명한 해리 할로의 철사 원숭이 실험, 자신의 믿음과 행동이 서로 갈등을 일으킬 때 사람들이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는가를 연구한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연구, 정신 진단이 얼마나 타당한가를 실험하기 위해 가짜 정신병 행세를 한 데이비드 로젠한의 가짜 정신병 환자 실험, 유복한 환경의 쥐와 비참한 환경의 쥐에게 물과 마약을 탄 음료수를 똑같이 주었을 때 비참한 환경의 쥐만이 마약 중독에 걸린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약 중독이 약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임을 밝힌 브루스 알렉산더의 쥐 실험,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기억이 거짓일 수 있음을 증명한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 인간의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고 망각되는가를 연구한 에릭 칸델의 기억력 연구 등이 그것이다.
인간 심리에 관한 예리하고 놀라운 진실들
왜? 라는 작은 의문에서 시작되어 인간의 자유 의지와 복종 문제, 사랑의 본질, 군중 심리와 방관자 효과, 기억의 메커니즘, 스킨십의 힘 등 인간 심리와 관련된 핵심 주제를 심도 있게 파헤치는 10편의 실험들은 20세기 심리학사는 물론이고 인접 학문 (교육학, 철학, 광고학, 경영학, 의약학 등)에 뚜렷한 족적을 남길 정도로 인간에 관한 예리하고 중요한 통찰력을 전달하고 있다.
<미국 최고의 수필상> 수상에 빛나는 탁월한 스토리 구성력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단지 실험 내용에 있지 않다.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딱딱하고 단조로운 논문에 갇혀 있는 인간에 관한 통찰력을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할 것인가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독자에게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가장 효과적인가를 고민한 저자는 결국 ‘사람’과 ‘줄거리’와 ‘역사’가 있는 이야기체 서술 방식을 선택한다. 실험을 실시한 심리학자들의 성격과 최종 연구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실험이 초래한 결과 등을 탁월한 스토리 구성력으로 흥미진진하게 추적한 것이다. 실험자라는 한 인간이 자신의 이론을 발견하기까지 겪었던 일련의 과정을 생생한 필체와 맥락으로 전개함으로써 저자는 각 이야기에 역사성과 필연성, 극적인 생명력을 부여하였다.
상자 안에서 길러졌다는 스키너 박사의 딸을 수소문하여 찾아다니고, 마약의 중독성을 실험하기 위해 직접 복용해보는 등 저자의 개인적 체험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 현장감이 더욱 생생하다.
1994년과 1997년 <미국 최고의 수필상 American Best Essay>을 두차례 수상하고, 1993년 <뉴레터 문학상> 논픽션 부문 창작상 1993 New Letters Literary Award in creative non-fiction을 수여한 저자의 유려하고 서정성 넘치는 문체 또한 글의 수준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인터파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