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나 미들턴 | 김준영 | 들녘 | 2004.08.10
1.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만남 BBC 방송과 할리우드 영화사가 선택한 ‘물개’
오늘날 우리의 관심은 분명 자연과 환경일 것이다. 19세기 근대화와 함께 진행된 산업화는 20세기를 지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자연의 훼손과 환경의 파괴라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고, 이로 인한 인간의 삶은 황폐화되기에 이르렀다. 21세기는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고 좀더 인간적인 환경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들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출판계에서도 ‘녹색바람’이 불면서 환경의 문제를 집중조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세계사적 흐름을 읽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이 목소리는 당위적이거나 구호적이지 않다. 이 이야기는 아주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물개와 음악으로 교감을 나눈 피오나라는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아름답고 의미 있는 상상력과 함께 새로운 자극을 전해주고 있다. 인간과 동물이 음악으로 경계를 뛰어넘고, 서로 교감을 이루어감으로써 자연스럽게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성의 시각으로 생명에 대한 경이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하나의 대안주의로 떠오르고 있는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의 가능성 또한 살펴볼 수 있다. 에코페미니즘이란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한 생태여성론이다. 자연생태계와 인간은 하나이며, 생명의 가치, 평등한 삶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이 운동은 지금까지 남성중심,서구중심,이성중심의 가치와 삶의 방식이 세상을 황폐화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여성의 억압과 자연의 위기를 동일한 억압구조에서 파악한다. 남성이 곧 문명이고, 여성이 자연이라면 남성과 여성, 자연과 인간문명은 처음부터 하나이고, 이들의 어울림과 균형을 통해모든 생명체의 통합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미 ‘제인 구달과 침팬지 이야기’에서 그 가능성과 대안을 보여주었듯이, ‘피오나의 물개 이야기’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우리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우리 땅 백령도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약 2백 마리의 물개가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또한 어린이들에게 재롱을 부리며 즐겁게 해주던 물개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우리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은가. 먼 이국 땅에서 전해오는 스코틀랜드의 이 물개 이야기는 마치 동물원에서 어린이들의 친구처럼 만났던 어느 물개를 떠올리게 하면서 피오나의 연주에 귀 기울인 물개들의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한다.
이 멋진 이야기는 이미 영국 BBC 방송을 비롯해 전 언론에서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낸 바 있으며, 내년 여름 극장 개봉을 위해 할리우드에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디즈니 회사의 간부였던 에릭 영(Eric Young)은 그녀의 삶을 영화화하고 있다고 최근 (2004년 7월 9일자) 지가 피오나와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2. 물개와 교감을 나눈 아주 경이로운 이야기
이 책은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그러면서도 강력하고 날카로운 메시지가 있다. 켈트인의 신화와 전설이 흐르고 있는 스코틀랜드 아일레이의 헤브리디스 섬을 배경으로 도시 문명의 삶을 떠나 야생의 삶으로 돌아간 피오나라는 한 뮤지션이 물개와의 교감을 통해 생명에 대한 신비와 소중함을 깨닫고 실천적 삶을 사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피오나는 물개들이 처한 위기의 생태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생명의 가치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며 20년 넘게 이곳에서 살고 있다. 피오나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1976년 첫 스코틀랜드 여행을 통해서였다. 처음으로 아일레이에서 짧은 나들이를 하는 동안 킬달톤에 대한 특별한 사랑이 싹트고 점점 커져 그곳은 영원한 정신적 고향이자 음악적 영감의 샘물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듯이, 피오나는 위스키의 섬으로만 알려진 이곳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바이올린 노랫소리를 듣고 모여든 물개들. 이렇게 시작된 만남으로 물개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면서 피오나는 이 놀라운 경험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들려준다. 간혹 돌고래가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물개 역시 인간과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자 새로운 이야기인 것이다. 피오나는 비로소 이 놀라운 사실들을 믿게 된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물개들은 항상 인간 곁에 있었으며, 인간에게 자기들의 신호를 보내기 위해 애써왔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섬이 바로 물개들의 왕국이며, 오히려 자신이 물개들의 초대를 받고 이곳에 온 손님이라는 것. 피오나는 이 이야기들을 물개와 인간에 얽힌 전설을 통해 들려준다.
이 책에서 헤브리디스 섬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피오나의 물개들은 영적인 존재로 그려져 있다. 물개들은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높은 지능과 함께 다른 인간적 능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이들 물개들이 처한 위기의 생태는 단순한 환경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문제이며, 이를 위해 물개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나간다. 상처 입은 야생의 물개를 집으로 데려와 돌보고 치료하는 일은 때때로 가계에 주름을 지우고, ‘물개손가락’이라는 병에 걸릴 수도 있고, 감염이 옮을 수도 있는 위험하고 힘든 일이지만, 피오나는 이 모든 일들을 오직 물개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해나간다. 전설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피오나의 사랑과 헌신은 단지 바다의 해충으로 생각하여 물개 학살을 자행하는 양식업자들에게 물개들 역시 그들의 삶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야생의 파괴는 곧 우리 삶과 정신의 파괴임을 각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생명 존중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제 이 먼 스코틀랜드의 야생물개는 피오나의 표현대로 ‘바다사람’이 되어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피오나의 삶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는것은 그녀의 실천적 삶에 있다. 이 책에는 물개들과 생활하며 겪었던 일들이 잔잔하게 그려져 있는데, 독자들은 피오나의 사랑을 통해 물개들이 인간에게 전해주는 강력한 메시지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피오나를 제 어미로 여기는 듯한 물개들의 행동, 자신에게 사랑을 준 여인을 사랑하는 방법, 가족의 의미, 그리고 다시 야생의 삶으로 돌아가면서도 잊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는 물개들의 회귀 본능 등 물개와의 교감은 사랑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피오나의 이 특별하고 은밀한 사랑은 오늘을 사는 메마른 현대인들에게 사랑의 의미와 그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들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상상력과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또한 ‘음악으로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메시지는 다시 한 번 음악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터파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