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11일 (금) 22:20 조선일보
동물도 즐거움을 느끼며 산다
즐거움, 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 조너선 밸컴 지음|노태복 옮김|도솔|356쪽|1만4000원
고양이는 햇볕 쬐기를, 개는 공을 물어 오기를 즐기고, 암수 까마귀는 상대방이 부리로 자신의 깃털을 애무해 줄 때 기쁨을 누린다. 혹멧돼지·바다코끼리·찌르레기·곰치·복어·청개구리·참새에 이르기까지 동물들은 모두 즐거움을 추구한다. 동물도 즐거운 활동을 할 때 엔도르핀 같은 스트레스 감소 물질의 분비가 촉진된다.
동물행동을 연구하는 저자는 “과학은 동물의 ‘즐거움’이란 측면을 무시해 왔다”고 비판한다. 큰 그림을 좋아하는 과학자들은 자연현상을 진화론으로 설명한 채, 개별 생물들의 경험·감정·기쁨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번식은 성공적인 진화를 위한 수단이지만, 행복은 개체의 성공적 삶을 위한 수단이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동물의 교미를 ‘일’로 판단하는 이론을 부정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대표 사례라고 강조한다. “많은 동물이 번식기 이외에도 일상적으로 교미하고, 구강 성교나 성기 자극, 이종 간 성적 결합도 한다. 영장류·육식동물·박쥐·해마·발굽동물·고래류·설치류 등 최소 7목(目)의 포유류가 자위행위를, 300종의 척추동물이 동성애(양성애)를 한다.”
저자는 과학계가 동물이 놀이에서 얻는 즐거움을 저평가해 왔다고 주장한다. 아마존 앵무새는 계단 손잡이를 타고 내려가다 끄트머리에서 꽉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멈추는 놀이를 하고, 침팬지는 배만 안 고프면 놀고 싶어 입을 쫙 벌리고 이빨은 입술로 가리면서 “놀아보자”는 신호를 서로에게 보낸다. 알래스카 물소는 얼음을 지치며 논다.
저자는 “완두콩만한 뇌를 지닌 채 ‘3초 기억용량’을 가졌다”고 하는 것은 물고기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라는 견해에 동조한다. 호주 진홍반점무지개물고기는 수조에 쳐놓은 그물을 빠져 나가는 방법을 기억하고, 눈 먼 멕시코동굴물고기는 수조의 장애물을 아무리 바꿔도 피해갈 줄 안다. 물고기는 놀이를 하며, 감정을 느끼고 전한다고 서술한다.
저자는 동물들의 환희의 순간을 명쾌하게 포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코뿔소는 동물원 우리를 벗어나면 발길질을 하고 뒷다리로 우뚝 선다. 석탄을 운반하다 탄광에서 빠져 나온 노새는 미친 듯 날뛰며 햇살을 반긴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아니라 ‘낙(樂)자생존’임은 저자가 오랜 관찰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삶에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만 있는 것은 아니며, 자연은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는 동물들의 행동에 대해 즐거움으로 보상한다는 것이다. 원제 ‘Pleasurable Kingdom’
[박영석 기자 yspark@chosun.com]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