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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펀딩] 사건, 그 후의 이야기 <케어TV> 그 여섯 번 째
어느 늙은 말에 관한 이야기
경주 꽃마차 말 학대사건
여기 한 늙은 말이 있습니다.
짧은 다리를 가진 몽고 말 삼돌이는 볼품없는 외모로 마차를 끄는 용도로 팔려 와 무려 27년이상을 도심 속 아스팔트 위에서 마차를 끌었습니다. 삼돌이의 친구, 깜돌이에 대한 폭력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깜돌이를 구하려는 시도조차 없었다면, 깜돌이 구출 당시 마치 선심쓰듯 우리에게 내 던져 준 삼돌이가 구해지지 않았다면, 아무에게도 관심 받지 못했던 늙고 초라한 말 삼돌이는 아스팔트 위에서 마차를 맨 상태로 쓰러진 채 거품을 흘리며 그 길고 지루하고 고단한 생을 겨우 마감했을지도 모릅니다.
관광지의 낭만, 단지 인간에게 오락을 제공하기위해 평생을 지옥 같은 괴로움을 감수하는 세상의 수많은 말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내 이름은 삼돌이. 오늘도 난 마차를 끌고 잿빛 아스팔트를 달립니다.
“ 왜 이리 꾸물거려!”
열심히 달려보지만, 마음처럼 다리는 따라주질 않습니다. 어디 한번 죽어봐라 하며 채찍을 휘두르는 주인님. 죽을 것 같은 고통에 펄쩍펄쩍 뛰는 나를 보고 늙은 말이 꾀를 부렸다며 비웃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다리가 짧고 키 작은 못생긴 말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말로 태어난 것이 마차를 끌어야하는 죄라도 되는 것처럼 수레를 끌라며 채찍을 휘두릅니다. 하지만 굵은 채찍보다 무서운 것은 딱딱한 아스팔트 길. 오래된 말발굽 때문에 도로를 달릴 때마다 커다란 유리가 박히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집니다. 배설물 처리하기가 귀찮다며 물 한모금도 주지 않는 주인님. 오늘도 열댓 명의 사람들을 내 마차에 태웠습니다. 너무 무거워서 달리다가 발이 꺾이고 고꾸라졌습니다. 재빨리 일어서려 했지만 허리가 안 움직였습니다. 무섭게 일그러진 주인님의 표정, 오늘 밤 나에게 닥칠 매질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안쓰러운 친구는 깜돌이.
키가 크고 다리가 긴, 나와는 정반대로 생긴 검정 말 깜돌이는 원래는 달리기 경주를 하던 말이었습니다.
어느 날 발목이 꺾여 부상을 입자, 깜돌이는 거세를 당하고 이곳으로 팔려왔다고 합니다. 그때의 사고로 뒷 발을 쓰지 못하는 깜돌이, 사람들은 그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프게 때리면 달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차 끄는 걸 극도로 싫어했던 깜돌이. 발목도 아팠을테지만 자동차 사이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걸 너무나 무서워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팔려가기 전, 사람들의 발길에 깜돌이의 입에서는 붉은 거품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내 친구 깜돌이는 또 다른 어딘가로 팔려 갔습니다.
하늘빛이 아스팔트 빛과 같아질 때에라야 우리들은 겨우 마차를 벗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좁은 트럭의 딱딱한 짐칸 속, 쇠로 된 바닥에 몸을 펴지 못한 채 잠을 청합니다.
몸은 배기고 쑤시고 , 바깥에선 여전히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들이 시끄럽게 들립니다.
두 친구
2014년 2월 22일 JTBC 방송팀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경주 관광지에서 운행되는 꽃마차의 말이 학대당한다는 제보가 들어왔는데 검토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제보자가 직접 찍은 동영상을 메일로 보냈다고 하여 확인 후 다시 연락하기로 하였다.
동영상에는 여행지의 낭만으로 포장 되었던 꽃마차 뒤의 잔혹한 현실이 녹화되어 있었다.
까만 말 한 마리가 마차를 끌고 들어오고 있다. 흰색과 빨간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마차,열두 명은 너끈히 앉을 수 있을 듯 좌석들이 길게 이어진 형태이다. 바람을 막을 창문과 지붕까지 봉고차를 방불케하는 설비, 무게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 이 마차를 끄는 것은 새까만 말 한 마리, 깜돌이였다.
온몸과 머리를 흔들며 휘청거리는 모습이 척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상태인 깜돌이. 그런데! 옆에 서있던 남자가 깜돌이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내려치는 채찍질, 매질이 이어지자 깜돌이는 무너지듯 쓰러졌다. 고통스러운 듯 경련하며 구르는 깜돌이. 누운 것에 더욱 자극을 받았는지 남자는 말의 머리를 세차게 걷어찼다. 발길질과 채찍질, 장시간 이어지는 폭행. 그 와중에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이 깜돌이에게 묶여있는 마차를 분리하여 어딘가로 끌고 갔다. 제정신이 아닌 듯 버둥대는 깜돌이. 마차만 챙길 뿐 깜돌이를 때리는 그를 말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폭력은 그 이후에도 한참동안 계속되었다.
현장 출동 – 사라진 깜돌이
2014년 2월 23일 JTBC 방송팀과 함께 현장에 출동했다. 여러 대의 꽃마차들과 말들이 잠을 자는 용도로 쓰는 듯한 트럭들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는 신원을 밝히며 며칠 전 깜돌이를 학대한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그런 폭행은 없었다며 강하게 부인하는 직원들. 목격자와 동영상이 있다고 이야기하자 꽃마차 측에서는 동영상 속의 폭행당하는 말은 자신들의 말이 아니라며 강변하였다. 계속되는 거짓말, 말들의 처우와 건강상태를 묻는 질문에 그들은 강하게 반발하더니 말들을 끌고 어딘가로 황급히 철수하였다.
꽃마차라는 이름 뒤에 숨겨져있던 현실
트럭의 짐칸은 말들이 사는 마방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말이 몸을 뻗어 누울 만큼의 공간도 되지 않았다. 벽면에는 낡아서 생긴 구멍들이 가득했고 말들에게 필수적인 흙이나 건초는 턱없이 부족했다. 쉼터라고 부르기도 구차한 누더기 같은 장소. 쓰러져서 버둥거리던 말의 모습이 열악한 시설 곳곳에서 그림자처럼 어른거렸다.
그날 폭력을 막는 이가 한 명도 없었던 것처럼 그 누구도 그 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케어에서는 말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영상 속의 남자의 정체와 행방을 끝까지 추적, 여러 단계의 수소문 끝에 그날 밤 경주에서 수십 킬로 떨어진 칠곡에 위치한 그의 거주지를 알아냈다. 쉴 새 없이 말을 때리던 그 남자는…
깜돌이의 학대자
그는 꽃마차 업체의 대표로 KBS 인기 다큐멘터리에 출연, 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방송되었던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의 직원들처럼 동영상 속의 깜돌이는 자기 회사 말이 아니라며 강하게 부정하는 학대자.
그러나 그는 영상 속의 모자와 똑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케어에서는 말의 안전과 구조를 최우선으로 두고 깜돌이의 행방을 알려줄 것을 끈질기게 요구하였으나 그는 끝까지 알려주기를 거부하였다.
결국 다음날 깜돌이의 학대 동영상은 JTBC 뉴스에 방송되었다.
깜돌이를 패는 잔인한 모습에 높아지는 비난 여론에 결국 그는 깜돌이는 자신의 말로 학대 사실을 인정, 케어에 고발하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폭력을 당한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말이었으니, 우리는 그를 용서할 아무런 자격이 없고 오로지 말 못하는 동물을 대변할 뿐이었다. 케어에서는 그를 동물 학대로 고발하였고 이제 숨겨놓은 깜돌이를 구해내야 했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밤을 새서 전국 꽃마차 말들의 이미지와 관련 영상을 분석한 결과, 깜돌이의 정확한 모습이 담긴 이미지 하나를 구글에서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경찰서에 동행 협조를 요청, 25일 오후 다른 지역으로 팔려간 깜돌이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었다.
고통을 끝낼 시각 – 깜돌이의 귀환
깜돌이는 이번에는 승마용으로 판매되었고 다리 불구인 것을 뒤늦게 안 새로운 주인은 깜돌이를 탈 수도 없어 우리에 가둬놓은 상태였다. 말의 주인은 케어에 돈을 받고 깜돌이를 인도하였다.
드디어 동영상으로만 보았던 깜돌이를 만나는 날. 경주마에서 꽃마차 말, 승마용 말이 되기까지 여러 곳을 전전한 깜돌이의 다리와 몸, 그리고 마음은 이미 많이 망가진 상태였다. 작은 손짓에도 흠칫 놀라며 물려는 시늉을 하거나 거친 호홉을 내뱉을 정도로 사람에 대한 공포심은 극도로 높았다.
찬란했던 마지막 6개월
깜돌이를 구출하는 날 꽃마차 업주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나머지, 여론을 잠재우고자 나이 들고 쓸모없다고 판단한 -사실은 얼마 안 가 죽을 거라고 판단한 – 여전히 꽃마차를 끌고 있던 삼돌이를 선심 쓰듯 건네 주었다.
케어에서는 안락한 보금자리와 드넓은 평원이 마련된 장소에서 이 두 친구를 평생 일하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할 곳을 수소문 했고 결국 그런 곳이 나타나 주었다. 두 친구가 함께 지낼 수 있는 아늑한 마방을 만들어 주었다. 극단적인 노동을 견뎌야 했던 말 삼돌이는 수의사의 판단으로 30살이 넘었다고 했다. 말의 평균 나이는 25세 정도다. 평균나이를 훌쩍 뛰어 넘고도 살아서 고통을 견뎠던 삼돌이. 이제 막 찬란한 생애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초고령 말이었던 삼돌이는 입양처에 도착하자 그 간의 긴장이 풀렸는지 그 다음 날 바로 쓰러져 버렸다. 좋아하는 당근을 주어도 먹지 못하고, 탈진한 듯 계속 누워있었다. 상태를 살피던 수의사는 안전한 장소에 오니까 이제야 마음 놓고 아픈 것 같다며 혀를 끌끌 찼다. 삼돌이가 쓰러지자 깜돌이는 어쩔 줄 몰라하며 삼돌이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걱정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아니 그간 삼돌이를 의지하고 지냈을 깜돌이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온 듯 했다. 며칠간 수액을 맞히며 지극정성으로 간호한 결과 가망이 없어 보였던 삼돌이는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깜돌이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줄어들어 동영상 속의 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건강한 말로 변하였다. 풀밭에서 모래밭에서 두 친구는 행복해 어쩔 줄 모르는 듯 뛰며 놀았다.
그러나 2015년 8월 22일 깜돌이는 전염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수의사 선생님과 함께 적극적으로 치료하였지만 결국 뇌까지 바이러스가 전염되어 손쓸 수 없는 상황, 전문가들과 논의 끝에 근육마비와 욕창으로 고통 속에서 죽어갈 깜돌이를 위해 안락사를 시행했다. 구출한 날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난 후였다.
깜돌이가 죽은 후, 삼돌이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우울증에 걸린 듯 잘 움직이지도 않았고 성격도 소심해졌다. 두 친구를 응원하던 사람들이 찾아오고 입양자의 지극 정성으로 다시 평온을 되찾은 삼돌이는 구출한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있다.
“사람이 사람을 멈춰야 합니다”
관광지에서 여행객의 오락을 위해 운행되는 꽃마차는 승마용으로 가치가 상실된 퇴역마나 몽고마들을 사용하는데 말들이 늙고 병들 때까지 마차를 끌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이 끄는 무게에 대한 제약이 따로 없어 과도한 무게를 끄는 경우가 많이 있으며 돈을 아끼기 위해 말발굽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걷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럴 때 말이 느끼는 고통은 여성이 하이힐을 신고 수레를 끄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또한 꽃마차 주인들은 말의 배설 활동을 줄이고자 꽃마차를 끄는 노동을 시키면서도 하루 종일 물을 먹이지 않고 말이 자신의 배설물 통을 달고 다니게 하는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야간에는 홍보를 위하여 네온등을 달고 시끄럽게 음악을 울리며 꽃마차를 끌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예민한 동물인 말의 특성상 심각한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동물권 단체 케어에서는 2011년부터 11월 전국 꽃마차 운영에 대해 실태조사를 실시, 2012년 5월에는 서울시에 마차 이용 금지 안내문을 설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2014년 2월 23일 JTBC와 함께 경주 꽃마차 학대 현장을 취재하여 동물 학대를 고발, 벌금형 200만 원을 선고받도록 하였다. 이후 전국적으로 꽃마차 반대 운동에 착수, 경주시와 진해시의 꽃마차 운행 금지 결정을 성취하였으며 과천시에서 시내에 꽃마차 도로를 만들어 상설화하려는 시도를 저지하였다. 이후에도 꽃마차 행위를 금지하는 지속적인 감시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깜돌이를 학대했던 꽃마차 업체는 대표자 명을 바꾼 채 아직도 영업 중이다. 케어는 도심 내 관광, 오락 목적의 우마차 금지와 함께 도심 내 오락을 위해 동물을 수탈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입법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꽃마차를 타는 사람들이 있는 한 꽃마차를 끄는 말들의 지옥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동물과 돈, 그 지점에는 언제나 학대가 있다. 폭력이 있다. 우리가 그 아픔을 막아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