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듬어진 골목길을 걷다보면 작은 평상이 보입니다. 따뜻한 햇볕이 드는 날이면 주민들이 평상위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일 겁니다. 그 옆을 아무렇지도 않게 머물다 사라지는 녀석들, 바로 길고양이입니다.
<장수마을 고양이>
“장수마을로 내려오는 가파른 계단”
이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천천히 동행하는 녀석을 볼 수 있습니다. 하얀 바탕에 검은 반점이 있는 고양이는 짧은 동행길에도 사람과 익숙해 진 듯 아무렇지도 않게 저를 바라봅니다. 동그란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자 커다란 동공 속의 미세한 떨림 뒤로 작은 우주가 펼쳐져 있습니다. 이미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찾을 수 없습니다. 카메라로 이들을 담기 시작하다보니 길을 오가는 작은 생명들이 눈에 들어왔고 점차 길고양이에 대한 관심을 넘어선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스팔트 위 죽은 고양이>
한번은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 숲으로 숨어드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겨울, 성곽 길 위 휘어진 나무를 돌아 불어온 바람과 함께 싸늘한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다른 녀석들은 어디로 사라진걸까요? 꽝꽝 얼어붙은 작은 몸둥이위로 나뭇잎들이 이불처럼 내려 앉아 있었습니다.
“납작한 모양이 되어 아스팔트위에 쓰러져있던 검고 작은 물체”
그 모양이 마치 누군가 떨어뜨리고 간 털목도리와도 같았습니다. 일으켜 세우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금세라도 툴툴 털고 일어나 반짝이는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가족 곁으로 사라질 것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고양이 점프 컷>
평화로운 장수마을,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곳에선 길 위를 정처없이 떠돌며 하루를 연명해나가는 작고 여린 고양이들의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 있거나, 하염없이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인간에게 내몰려 쫒기거나, 그러다 결국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천덕꾸러기로 내몰려 학대당하는 길고양이들에게서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슬쩍 떠올렸지요.
“거리의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지만 외면받는 가난한 사람들처럼”
<쓰레기 위의 고양이>
장수마을에서도 ‘고양이 살해사건‘ 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몰래 사료그릇에 쥐약을 넣었고, 그것을 먹은 길고양이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처참하게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따뜻한 봄이 오기 전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삼선교 근처에서 혼자 사시며 길고양이들을 돌봐주신 할머니께서는 넋이 빠진 모습으로 고양이의 죽음을 슬퍼하십니다.
“그 어떤 사람보다 고양이들은 할머니의 친근한 벗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피를 토하며 몸부림치다 쓰러진 고양이의 흔적을 더듬어 봅니다. 도대체 누가 그런 것일까요? 모두가 사라져버린 그 곳엔 독극물로 길고양이를 해치는 행위를 경고하는 현수막만이 남아 고양이들이 채 느껴보지 못하고 떠난 따뜻한 봄바람에 펄럭입니다.
<자동차 바퀴와 고양이>
자동차 바퀴에 치어 죽은 어린 고양이에 대해 어느 시인은 이렇게 표현 했지요.
씹지 않아도 혀에서 살살 녹는다는
어느 소문난 고깃집의 생갈비처럼 부드러운 육질의 느낌이
잠깐 타이어를 통해 내 몸으로 올라왔다.
부드럽게 터진 죽음을 뚫고 그 느낌은 내 몸 구석구석을 핥으며
쫄깃쫄깃한 맛을 오랫동안 음미하고 있었다.
음각무늬 속에 낀 핏자국으로 입맛을 다시며
타이어는 식욕을 마저 채우려는 듯 더 속도를 내었다.
– 고양이 죽이기, 김기택
“고양이를 괴롭히지 마세요”
봄인듯 싶더니 한참이나 비가 내렸고 한여름 뙤약볕처럼 햇볕이 내리쬐던 어느 날. 무지개계단 위를 어슬렁거리는 또 다른 길고양이를 발견했습니다. 지난 겨울, 동료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목격한 녀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모습이 매우 형형해 보이고 당당해 보였습니다.
<아기 고양이>
현재 서울에만 길고양이 25만 마리가 살아가고 있으며 매년 2만마리가 새롭게 버려지는 것으로 집계 된다고 합니다……. 사랑에도 책임이 뒤따르기 마련일텐데요. 한때는 가족처럼 여기며 애지중지 키웠을 고양이들입니다. 인간의 무책임과 이기심이 이들의 삶을 유린하고, 결국 도시생태계의 구성원 중 하나인 고양이들을 비참한 죽음으로 내몰게 하였습니다.
이제 길고양이를 비롯한 유기동물 문제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정책과 사업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건전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것입니다.
<마을 카페와 고양이>
‘집’은 먹고 자고 내일의 노동을 위해 쉬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재산을 모으는 수단이 되어버린 세상입니다. 함부로 부수고 깨뜨려 다시 짓는 것이 발전이고 희망이라는 이야기가 세상을 휩쓸 때, 장수마을에서는 묵묵히 사람과 사람간의 마음을 열고 소통이 차단된 마을을 넘어서려는 노력들이 있어 왔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고양이 벽화>
삶의 보금자리로부터 뭔가를 일구어내려는 주민들은 움직임은 이제 자신의 공간을 넘어 곁에 조용히 살아가는 길고양이도 배려하고 함께 공존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집니다. 마을 곳곳에는 작은 고양이들의 보금자리가 만들어 지고 일상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활력처럼 마을 곳곳에 즐거움으로 활짝 피워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을 기다리겠습니다.
※사진의 저작권은 사진가 최인기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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