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이 된 우리는 의식적으로 씻고, 먹고, 자고, 움직이고….그렇게 생활을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지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딘가에 짧게 묶여,
단 한번도 전진이나 후진없이 제자리에서만 서 있어야 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끔찍할까요.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단 한번도 씻지 못하고….
동물은 어디까지나 동물입니다.
사람처럼 푹신한 침대에 온돌에 수세식 화장실 갖춰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동물로서 기본적인 삶은 유지하도록 해줘야
‘키운다, 돌본다’는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빠서 저렇게 두지만, 그래도 동물을 좋아하니 데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말이 얼마나 궁색한 변명인지는,
동물들 상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이번 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 전 다녀온 경남 진주 학대건처럼 거품 물도록 맞는 동물들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비위생적인 상태에서 관리 부실로 서서히 병들어 죽어가는 것.
방치도 결국 학대입니다.
<한 살 남짓된 푸들 아이. 심장사상충 양성.
심하게 털이 엉켜있고, 우주 최강의 쓰레기 냄새…..>
인천의 한 주택의 마당에 방치되어 상태가 안 좋아진 개 두 마리를 구조요청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오랜 시간 제보자께서 그 동물들의 환경 개선을 위해 애쓰셨으나,
그 집 가족들과 마찰만 커지고 결국 동물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에 협회에 도움을 요청하신 것입니다.
지난 주에 서울지부장님, 배현숙님과 함께 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보통 이런 구조 요청건은 이웃 사이의 분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으므로 제보하시는 분들은 소극적으로 나올 때가 많습니다.
제보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데,
‘끔찍한 동물이 있다, 나머지는 알아서 해달라’ 라는 식의 구조 요청은 협회에서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현장 확인 이전에 제보자와 여러 번 통화를 하였고,
제보자께서는 협회의 학대 구조란의 여러 글들을 보셨는지
본인께서 하실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 하신 상태였습니다.
제보자께서 여러 정보를 자세하게 주신 덕에 다행히 좋은 방법을 찾았고, 마찰 없이 동물들을 구조하여 나올 수 있었습니다.
#. 척 보기에도 오랜 시간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시츄 믹스와 푸들이 마당에 짧게 묶여 있었습니다.
둘 다 심하게 털이 엉켜 있었고, 시츄는 한쪽 눈 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
비위생적인 환경.
한여름인데도 다 썩어가는 물을 갈아주지 않았고, 밥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으며
푸들(남)과 시츄(여)의 교배로 태어난 새끼들은 관리를 하지 않아 겨울에 다 얼어죽었다고 합니다.
엉킨 털을 정리해 주고 목욕을 시켜주려고 하면 남의 개이니 손대지 말라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집안에서는 햄스터를 키우고 있었는데,
번식률이 높은 햄스터를 감당하지 못하자
중학생인 아이가 아무에게나 주고 소액에 팔아 왔다고 합니다.
숫자가 꽤 많았다는 햄스터는 저희가 갔을 때 고작 네 마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가족들을 설득하여 모든 동물을 데리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행여 가족들 마음이 바뀔까 계속 조동이 놀리느라 바빠서,
미디어 담당이 영상 촬영만 했을 뿐 현장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두 번 다시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을 받았고,
동물을 키우고 싶을 경우 협회로 연락하여 교육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시간이 늦었기에 제가 다니던 병원으로 데려가 기본 진료를 받았습니다.
<각막 궤양을 앓고 있는 시츄. 이미 진행이 꽤 된 상태임.
뭔가에 날카롭게 긁혀서 궤양으로 번진 상태가 계속 방치되어 이미 자가 치유가 시작되었다고 함.
손쓸 수 있는 시기를 지났기에 실명 가능성이 큼.
심장 사상충 양성.>
속상하게도…..둘 다 모두 심장사상충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시츄는 다행히 초기.
푸들이는 이미 2기 정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푸들이가 기침을 하지 않아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시츄 아이는 학대의 흔적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도구를 보면 입질을 하더군요.
막대기나 몽둥이 비슷하게 생긴 도구를 보면 자꾸 으르렁대며 도망을 가려고 했습니다.
병원 진료를 끝내고 한밤중에 6마리의 동물들을 데리고 아파트로 귀가하였습니다.
냄새가…………..@.@
아, 이 냄새는 맡아도맡아도 적응이 안 돼…….ㅠㅠㅠ
푸들이는 대형 케이지에 넣어두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두 마리를 다 할 자신은 없고, 급한대로 입질을 하는 시츄의 미용을 시작하였습니다.
봉사자를 물면 보호소에서 미용이 늦어질 테니까요.
참…..목줄하고는.
할 말이 없다.
긴장을 해서 침이 뚝뚝.
떡들이 주렁주렁. 자, 또 신의 가위질을~~
다 낡은 목줄과 털들을 싹 벗고,
이제 가볍게 새 삶을 시작하자.
쨘~~~~
그런데…많이 말랐구나…머리통만 크네…
비교적 순합니다. 입질도 점점 줄고. 꽤 오랜 시간 미용을 잘 참아주었어요.
목욕 후. 베란다에서 한컷.
움직이는 법을 몰랐던 아이처럼 얌전하던 아이가,
목욕 후 한시도 가만있지를 않고 온 집안을 헤매고 구경하고 다녔습니다.
가만히 내버려 두었어요. 얼마나 좋겠어요, 움직일 수 있는 자유.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눕고 싶은 곳으로 가 눕고,
먹고, 싸고, 마실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
숨쉬고 있다면 누려야 하는 자유.
#. 적극적인 노력을 보여주신 제보자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구조현장에서 큰 도움 주신 서울지부장님과 배현숙 활동가께도 감사드립니다.
몸도 안 좋으신 데다가, 어려운 시간을 빼내어 도와주셨습니다.
#. 또 한밤중에 하품하며 들어간 미디어팀 지은민 인턴에게도 미안한 마음 전합니다.
(푸들이는…………..미용 못했어요. 죄송;; 이번 주내로 보호소에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