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 동물사랑실천협회(CARE)로 긴급한 구조 요청이 올라왔습니다.
전신 피부에 심각한 상처가 있고 털이 뽑힌 살에서 피가 난다는 백구를 제보해 준 사람은 인근 중학교의 학생들이었습니다.
제게 전송된 백구의 사진을 보니 한눈에도 심각한 피부병이 진행되었고 위중한 상황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ㅠㅠㅠㅠ
하루에 다녀올 수 없는 거리.
주인이 있는 상황이라니 구조에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고.
비용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
또한 만약 주인이 그 상태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라면 마찰이 예상되므로 혼자 갈 수 없었습니다.
(한 명이 경찰서 끌려가면 남은 한명이 구조를 해야 하므로;;;)
자칫 빨간 줄 그어질 위험이 있으므로 대표님과 가기로 하고 일정을 맞춰 드디어 제주도로 출발하였습니다.
구조를 확신할 수 없어서 항공을 편도로 잡았는데, 아 정말 신세계를 경험했습니다~ ㅋㅋㅋ
이번 구조엔 비용이 꽤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므로 도저히 개인적으로 감당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 후원금으로 다녀왔습니다…) 최대한 비용을 절약하는 방법으로 일정을 짰는데,
제주도로 가는 최저가 항공편들이 몇몇 있더군요.
정말 싼 편도를 찾아서 예약했는데, 아…………..
제가 멀미를 심하게 합니다.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한바탕 토했습니다~~
대표님은 90도의 그 자세에, 이상기류로 비행기가 계속 댄스를 추는데도 잘 주무셨더군요. 흠.
속을 다 비우고 가뿐한 마음으로 차를 렌트하여 백구를 찾아나섰습니다.
정확한 주소가 없었기에 인근에 도착하여 사진 속의 벽과 계단이 있는 건물을 찾기 위해 돌았고,
드디어…백구를 만났습니다.
보는 순간…..각오를 했지만 콧잔등을 눌러야 했습니다.
제가 다가가자 무서워서 뒤로 피하고 떨더니, 맛있는 냄새 풍기며 앉자 조심스럽게 나옵니다.
수없이 피가 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 딱지가 앉아 있었습니다. 입 주변은 계속 피를 흘리고 있었구요.
몸에서는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 건물의 가게에서 이 아이의 주인 부부가 나오셨습니다.
대화를 나누어 보니, 주인이 이렇게 방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아이는 두 달 전,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몰골(전신 피투성이)로 비쩍 마른 채 동네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운이 좋아 그 동네는 주민들 대다수가 개를 좋아하는 곳이었고 많은 분들께서 이 아이를 안타깝게 여기셨다고 합니다.
지금 이 아이를 거두어 주신 부부는 치료를 해주기 위해 애써주셨습니다.
병원에 데려가 보았으나 장기 치료를 해야 하는데 병원비가 너무 엄청난 액수라 엄두가 안 났다고 합니다.
꾸준히 피부에 좋다는 기름을 발라주고, 항생제를 먹여 주셔서 그나마 피부가 더이상 부패하지 않고 전염 범위를 넓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동네 분들이 계속 맛있는 먹이를 챙겨주셔서 지금 백구는 말라 있긴 해도 심각한 영양 실조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서울로 이동하여 치료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다행히 구조에 시간을 끌지 않아도 되었기에, 어떻게든 당일에 올라가려고 정말 번갯불에 콩 튀기듯 이동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1. 항공 수배
– 동물 이송이 가능한 항공은 많지만 문제는 이 아이의 몸 상태였습니다. 피부가 매우 안 좋기 때문에 한 항공사와 수차례 통화하여, 여러 조건을 받아들인 후 그에 맞춰 준비하여 이동하기로 하였습니다.
2. 케이지 수배
– 이 아이의 크기와 항공사의 요구 조건에 맞는 케이지를 찾기 위해 전화에 또 전화, 그리고 대형 케이지가 있다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저 상호를 보고 어찌나 웃었던지;;; <케이지가 여기 있었네>
다시 먼 길을 돌아 백구를 데리러 갔습니다.
제주의 하늘은 예뻤습니다. 구경할 짬도 없었지만, 고마운 풍경이었어요.
정말 우여곡절 끝에 케이지에 들어간 백구.
이 아이, 폐쇄된 공간을 발작적으로 싫어합니다. 발버둥에 발버둥을 거듭하더니 케이지 안에서 계속 똥을 싸서 두 번이나 치우고 다시 힘들게 케이지에 넣어야 했습니다.
백구야, 좀 앉아 봐. 이제 아픈 거 치료하러 가는 거야. 겁먹지 말고…
백구는…케이지 안에서 단 한번도 앉지 않았습니다. 긴장하여 침을 흘리면서도…
제주공항 도착.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가는 백구.
많이 불안해하며 요동치는 백구를 보더니 항공사 측에서 박스를 뜯어 외부가 보이지 않도록 조치해 주셨습니다.
화물칸으로 들어가야 하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잘 버텨주기만을 기도하며.
서울로 출발~~~
밤 10시 13분. 백구 서울로 입성하다.
대표님 백구와 눈맞춤.
백구가 계속 진정이 안 되어 배설물을 쏟아내자, 깨끗하게 해주고 비행기 태워야 한다며 공항 화장실에서 맨손으로 백구의 배설물을 모두 꺼내시던 대표님.
나름 산전수전 겪은 저도 감당 못할 만큼의 냄새였는데..
너무나 태연한 얼굴로 배설물을 맨손으로 꺼내시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네요. (전 옆에서 입덧 참으며 향수 들고 대기ㅠㅠ)
시간이 늦어 병원으로 못 가고 대표님과 백구는 하룻밤 동침하였습니다.
박씨 여인 둘이 제주도까지 가서 구조해 온 이 아이의 이름은 <박제주>입니다.
하도 귀한 분이라 성을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오늘. ‘박제주’는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협회 구조활동가인 부슬비 님이 박제주를 데리고 인천 연계병원으로 오셨습니다.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제주의 얼굴. 아직 겁에 질려 있어요.
<박제주>는 앞으로 장장 3개월 동안 입원 치료해야 합니다.
영양 실조였던 상황이라 내장 질환이 의심되어 피부 치료를 독하지 않게 장기적으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참, 박제주양의 주인께서는 마당에 집도 지어놓으시고 제주의 치료가 끝나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치료가 안 되어 지금 상태라 해도 키울 작정이었기에 품으셨다고 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주에서의 힘든 고통을 이제 마무리하고,
치료를 받은 후 다시 주인께 돌아갈 그날을 위해 박제주양이 힘낼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
박제주양을 제보해 준 학생들,
피투성이인 아이를 지나치지 않으시고 품어주신 주인분들,
그리고 이 냄새나고 아픈 아이를 흔쾌히 받아주시고 치료결정해 주신 보보스 동물병원.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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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정말 많이 힘든 하루였습니다.
거리가 멀고 이동이 힘들었다는 것 외에는 장애가 없는 구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시끄러워진 문제로 인해 대표님과 제 전화가 폭주하여 대낮에 폰이 방전될 정도였습니다.
여기저기에 협회 안락사로 인한 문제 제기가 올라갔는지 정말 전화가 많이 오더군요…
들르는 가게마다 충전을 부탁하여 가까스로 구조에 필요한 전화들을 할 수 있었고…
사고도 몇 번 날 뻔했습니다.
해야 할 일이니 당연히 합니다.
…..귀하게 올라온 아이입니다.
저 아이를 위해 움직였던 시간과 그 마음은 오해받지 않기를 바라며.
다소 무뚝뚝해 보였던 주인 아저씨와 동네 아저씨의 말씀이 마음에 맴돕니다.
” 처음에 쟤-제주-가 얼마나 심각했다고, 어떻게 죽지도 않고 저렇게 살아 있을까 할 정도로. 계단 하나 올라갈 힘도 없고 온몸이 피투성이인데, 스스로 죽지도 못하고 저거 얼마나 불쌍해, 응. 스스로 죽지도 못하고 말야…”
동물사랑실천협회 www.fromcare.org
l 협회 해피로그에도 같은 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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