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어의 동물운동 2

권력에 맞서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 올라온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는 해양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상업적 어업을 고발하면서 상업적 어업에 눈감는 해양환경보존단체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씨스피라시가 화제가 되면서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평가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신문 더 가디언도 씨스피라시에 대한 칼럼을 실었는데, 칼럼은 BBC 방송에 대한 비판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BBC가 우리 해양의 위기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을 때, 해양 생태계 파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수산업을 호명하지 않았습니다. 2017년 ‘블루 플래닛 2’에서 어업에 관한 비중 있는 장면은, 노르웨이 청어 보트가 범고래에게 얼마나 친절한지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 정도였습니다. 수산업은 해양 생물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 아니라 구제자로 그려졌습니다.

그것은 마치 화석 연료 회사의 역할을 밝히지 않고 기후 위기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아, 잠깐만요, BBC는 2006년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다큐멘터리 <기후 변화에 대한 진실>에서는 화석 연료 회사가 오히려 해결책으로 언급되었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탄소 포집과 저장을 실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들은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 가슴 졸이다가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한다”고 제안하지만 이 뭔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암시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들은 대부분의 미디어가 거의 늘 시달리고 있는 어떤 병증을 보여줍니다. 권력에 맞서는 것에 대한 공포증입니다. BBC가 나중에 더 나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생명 부양 체계에 대한 산업의 대규모 파괴가 아닌, 플라스틱 빨대 및 면봉과 같은 소비자에게 책임이 있는 미시적 문제로 우리를 이끄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회피행위입니다. 경제 권력에 맞서는 것에 대한 안전한 대체물입니다. 그것은 지구를 구하기는커녕, 체제문제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돌리고 효과적인 행동을 약화시킵니다.

<중략>

씨스피라시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 그러나 영화의 요지는 옳습니다. 언론과 보호 단체가 무시해 버린, 수산업이 전 세계의 많은 야생 생물 개체군과 생태계를 붕괴로 몰고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수산업이 전 세계의 많은 야생 생물 개체군과 생태계를 붕괴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언론과 환경보호단체는 이것을 심각하게 다루고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수산업이 전 세계의 많은 야생 생물 개체군과 생태계를 붕괴로 몰고 가고 있다는 주장이 거짓이라서 그럴까요?

축산업이 기후위기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은 오늘날 사실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언론과 환경보호단체는 축산업을 인류와 생태계의 위협요인으로서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태로 볼 때 수산업이 전 세계의 많은 야생 생물 개체군과 생태계를 붕괴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들은 그 문제를 무시할 것 같습니다.

언론과 환경보호단체가 야생 생물 개체군과 생태계의 붕괴와 같은 거대한 문제를 다루지 않지만 어쨌든 그들의 활동은 환경보호를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사는 이들의 활동을 회피행위라 부릅니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를 은폐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지요.

기사는 언론과 환경보호단체가 큰 문제를 무시하는 것을 힘 센 자와 맞서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안전 지향성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안전 지향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욕구 중에서도 생리적 욕구 다음으로 우선적인 욕구가 안전에 대한 욕구라고 하지요. 하지만 시민단체는 자신의 안전 지향성과 맞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는커녕 나빠지는 세상에 편승하여 칭찬받으며 장사하는 집단에 불과하게 됩니다. 아마 적지 않은 대형 시민단체가 이 모양일 것입니다.

안전 지향성과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요? 더 나은 세상은 먼 미래에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형체도 불분명한 것인 반면, 자신의 위험은 지금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자신과 상황을 늘 돌아보지 않으면 위험을 회피하고 안전을 추구하는 경향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안전 지향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시민단체가 시민운동을 향해 ”법을 지켜라“라고 말할 때입니다.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문제가 있고, 이 중에는 심한 충돌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법적 권리가 짓밟히는 체제에서 피억압자의 편을 들게 되면 실정법을 위배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게 됩니다. 사회운동의 역사에서 ”법을 지켜라“는 말은 늘 억압자의 편에 선 말이었습니다.

‘법을 지켜라’는 말을 하는 자들은 ‘물밑 협상’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운동이라는 시끄러운 방식이 아니라 조용한 협상을 좋아합니다. 운동도 필요하고 협상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운동과 결합되지 않은 협상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수자의 피억압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뭔가 해 보려는 잠재적 활동가들을 구경꾼으로 전락시키게 됩니다. 뭔가를 주고받아서 당장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전체 피억압상황의 해결과는 거리가 멀며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 누적되어 전체 상황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활동가들의 수가 늘어나고 그들의 역량이 성장하여 기존 체제의 기득권 세력을 누를 수 있는 수준이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전체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법을 지켜라’는 말을 하는 자들은 종종 ‘시민의 신뢰’를 내세웁니다. 억압체제의 수호자인 공무원들이 늘 내세우는 것이 시민이니 국민이니 하는 말입니다. 법 개정을 요구하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헌법적 결정으로 간접민주주의를 채택하였습니다. 세상이 분화되어 수많은 이슈가 발생하게 되었고 각 이슈별로 이해관계를 첨예하게 가지는 사람들은 다 다릅니다. 공무원들은 이해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되 위임받은 결정권을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사해야 합니다. 국민이니 시민이니 핑계될 것이 아닙니다. 시민의 신뢰,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두 가지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문제들에 있어서 실정법을 결정짓는 근본 요인은 시민의 여론이 아니라 정신적 이해관계를 가지는 활동가들과 물질적 이해관계를 가지는 산업의 상대적 힘입니다. 또 하나는 시민 다수의 생각이 잘못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숫자는 진실과 도덕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시민의 신뢰를 얻겠답시고 진실을 외면하고 소수자에게 등을 돌리는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시민단체의 자세가 아닙니다.

동물운동을 하는 단체라면 동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그 원칙을 늘 의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수많은 동물들을 노예보다 더 참혹하게 다루는 것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사회에서 그것은 위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케어는 그 길을 갈 것입니다.

함께 해 주십시오. 지지해 주시고 같이 활동가가 되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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