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가장한 동물활동가들, 이 땅의 동물들이 너무나 가엾습니다.

 


안녕하세요. 회원님들,  대표 박소연입니다.


 


얼마 전, 지구의 날 행사에 나가 채식 퍼포먼스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제게 비아냥 조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녀는 평소 안락사에 대한 거부감으로,  동물보호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만 있을때면 우리 단체와 저에 대한 비판과 험담, 왜곡된 소문들을 전하였고  그 소식들은 어김없이 제게 들려오곤 하였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제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 박소연씨가 어떻게 채식캠페인을 하나요? 무슨 자격으로? 동물들 안락사하지 않았나?  ”


 


저는 그녀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 안락사의 불가피성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현실을 바로 보세요. 현장활동을 해 보세요. 동물을 구조해 보세요. 당신은 동물보호가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지만 육식을 하는 사람입니다. 육식도 동물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입맛 때문에 먹기 위해서 죽이는 것입니다.  당신은 개의 안락사는 반대하면서 육식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개의 죽음만 반대하고 있습니다.  동물보호운동가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냥 당신은 애견인일 뿐입니다. ”


 


 


그녀는 제게 다시 조롱조로 이야기하였습니다.


” 박소연씨는 뭐 어려서부터 고기 안 먹었나? ”


 


저는 다시


” 네, 저는 8살 때부터 안 먹었습니다. ” 라고 하였습니다.


 


말문이 막힌 그녀는 마지막으로 제게 반말로


” 너, 내가 끝까지 따라다닐거야, 두고 봐, 앞으로 자주 보자, 자주 보자구…”


 


 


 


<안락사>


카라(KARA) 를 위시하여  일부의 무리들이 언제나 저와 우리 동물사랑실천협회를 흠집내기에 가장 좋은 명분은 ‘안락사’였습니다.


‘안락사’만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멸시와 수모, 비판과 조롱, 음해와 정신적 폭행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어떠한 위급한 동물들이 들어온다고 해도 안락사를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그 동물들을 외면해야 할까요?


외면하면 그 동물들은 살게 됩니까? 


지자체 보호소로 가서 운 나쁘게 고통사 당하는 것, 열흘만 보호되고 치료는 커녕 방치되어 죽는,


동물들을  그렇게 그런 곳으로 보내 버려야 직성들이 풀릴까요?


 


그들의 진심은 과연 무엇인가요?


연평도의 사진 한 장 찍어왔던 그 고양이가 그토록 소중하다면, 더 많은 동물들의 고통엔 어찌 그리 둔감할 수 있습니까?


 


< 임순례, 전진경, 강은엽씨.


동물들의 고통과 스스로의 명분을 저울질하여 얻은 것이 후자입니까?


 


우리는 우리 단체가 안락사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떠돌이 동물들의 환경이 나아진다면,


 지자체 동물보호소의 환경이 나아진다면,


그때는 우리 단체도 안락사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 단 한마리도 구조하지 않는 것보다,  지금은 정말 많은 동물들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그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 그것이 현재 우리단체의 활동방향입니다.


 


KARA 와 일부의 안락사 비판론자들!  


구조를 하지 않으려거든 차라리 평안히 자리에 앉아 일부 지자체 보호소와 유기동물 업무를 맡은 수의사들의 비인도적인 안락사 방법, 그것에 대해서라도 용기있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들이 인도적인 안락사를 계속 비판한다면,  당신들은 이땅의 동물들을 인도적인 안락사라는  혜택마저 받지 못하게 하고,


구조되어 새 삶을 가질 기회도 없이 오로지  고통과 방치, 무관심 속으로 동물들을 몰아넣었다는 오명을 쓰게 될 것입니다. 


 


제발, 현장에 나가 동물들을 바로 보고 공부들 좀 하시기 바랍니다. >


 


 


 


제가 동물의 고통보다 저와 단체의 대의명분을 더 소중히 생각했다면,


연평도의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 내장이 찢겨져 쏟아진 채 죽어가던 어린 발바리의 죽음을 외면했을 겁니다.


소주를 먹이던 제 모습이 언론에 비춰졌을 때의 일부 무리들의 반응을 제가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차라리 발바리를 끌어안고 통곡하는 그럴듯한 연기라도 했어야 하나 봅니다. 아무런 처치도 하지 않고서…


그랬다면 괜찮았을까요. 그랬다면 고틍스럽게 죽어가는 어린 발바리를 위해 어떤 도움이 되는 것입니까. 


 


동물들의 고통은 실로 처참하고 끔찍합니다. 그들을 보아야 하고 도와야 하는 우리의 고통쯤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들의 행동에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저들의 행동이 동물의 고통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마냥 순탄할 거라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행복하고 싶지 않지만, 방해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동물을 돕는 행동을 방해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동물에게 피해가 되는 일입니다.  동물들을 돕는 우리의 활동이 방해받지 않기 위해 회원님들의 적극적인 방어와 지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때로 보기 불편하고 안 좋아도 지금은 그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회원님들께 감사합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우리 동물사랑실천협회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동물사랑실천협회가 잘못된 정책과 맞서 물러섬 없이 강력히 활동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2006년 5월 제가 올렸던 글입니다. 지금과 비슷한 문제가 그때도 있었습니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문제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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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올리는 부끄러운 이 글이 어쩌면 게시판 상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 이름으로 올리는-




언제나…


이름을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명함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했지요…


명함을 만들 정신적 여유조차 없기도 하였고


단돈 만원이면 만들 수 있는 경제적 여유조차, 그동안 단체엔 없었습니다……


며칠 전 이하나 간사가 전화를 걸어 와 그러더군요….


아는 사람이 인쇄소를 하는데 대표님 명함 하나 정도는 거저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명함 달라는 사람들에게 종이에 끄적거리며 주는 것,  곁에서 보기에도 창피했다고…


명함,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명함 없이 국회의원들 만나려니 그것도 못할 일이더군요.,.






어쩌다 보니


원하지 않게 동물사랑실천협회는 곧 박소연이 되어 버렸습니다.


단체와 우리의 활동을 알리려 했는데도 그것이 곧 나 자신의 활동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름이 알려지면


그에 따른 댓가가 반드시 있습니다.


칭찬을 많이 받으면


그에 따른 댓가도 반드시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올려지는 글에 달리는 칭찬의 리플들…


스스로 보기에도 무색하고 걱정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다시 또 추락하는 순간이 오겠구나 하고…




좋은 일 뒤엔 반드시 나쁜 일이 오곤 합니다.


불행한 일 뒤엔 반드시 행복한 일이 기다리기 마련입니다.


좋은 일을 겪고 있을 때 그것이 반드시 좋지만은 않습니다.


뒤에 올 나쁜 일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불행한 일을 겪을 때면, 전 언제나 그 뒤에 올 행운을 기대하며 가슴 설레곤 합니다.


좋은 일도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고, 나쁜 일도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장수동 개지옥 사건, 장수동 단 하나의 사건만으로 


갑작스레 많은 분들이 가입하여 동물보호교육을 제대로 받을 시간도 없이,


협력을 하고 굳센 의지로 한 목소리를 외칠 때…


‘언젠가는  분열이 일겠구나’ 하는 염려로 뒤에 올 좋지 않은 기운을 감지하였었습니다.




우리나라 동물들은 참 복도 없습니다.


동물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수 많은 무지한 인간들과


아무런 생각 없이 그들의 학대에 동조하는 사람들,


그리고 동물을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가장한 또 하나의 동물학대자들.


현실을 모른 채, 현실을 외면한 채,


동물운동의 방향이 정립되지 않은 또 다른 진전없는 동물보호가들.


그들 속, 이 땅의 동물들은, 참으로 복도 없는, 가여운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가여워 이 땅을 떠나지 못합니다.


정말 그들을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자가 나타날 때 까지


내 미력한 힘이나마 끝까지 남아 어떠한 굴욕과 수치도 참아낼 것입니다.






명상은 오계를 지켜야했습니다.


그 중에서 나에게 걸리는 계율은 <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 >였습니다.


난 오래 전부터 동물보호법으로 해결이 안 되는 끔찍한 학대건을 가끔은 훔치기도 하였으니까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리 해야 하니까요…


입문이라는 절차를 거치며 선배 입문자에게 물었습니다.


‘끔찍한 학대속의 동물을 훔치는 것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인가’라고..


우문현답, 선배입문자의 답은 내 의문을 한 순간에 날려 버렸습니다.,


“ 무릇, 이 우주의 살아있는 생명들이 어찌 사람의 것일 수가 있는가, 그것은 그 생명 본연의 것이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을 구해 주는 것이다”




얼마 전 명상을 함께 하는 조계종의 스님 입문자를 만나 또 다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스님의 답은 내게 또 하나를 던져 주었습니다.


“ 스님이 산 속에서 참선을 하던 중 사냥꾼에게 화살을 맞고 쫓기던 사슴이 스님의 처소로 도망쳐 들어왔다


그 스님은 사슴을 살려 주고 싶었으나 사슴을 살려 주자니 사냥꾼의 재물에 손을 대는 것이고, 사슴을 내어 주자니 사슴을 죽이는 것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계율은 반드시 모두 지켜야 할 것이나 그 중에는 더 높은 차원의 계율이 존재한다.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는 계율보다 더 높은 계율은 살생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남의 물건을 훔친 업은 반드시 받아야 하고, 동시에 생명을 살려준 복도 함께 받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가 있을 때에 생명을 살려주고 그 생명의 댓가만큼  주인에게 반드시 주어야 한다.“




시위탁 보호소들을 조사해 가면서.


이제는 동물단체가 시위탁 보호소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동물들이 잘못된 유기동물제도 속에서 고통을 받는 현실을 더 이상 안락사가 마음 아프다고 외면하는 것은 내 스스로 비겁한 것이었습니다.


대개의 시위탁 보호소들은 마취약 값이 아까워 심장에 독약이 든 주사기를 그대로 꽂습니다. 안락사 약값이 아까워 물통에 넣어 익사시켜 버리는 것이 대한민국 시위탁 보호소의 현 주소입니다. 이미 죽어버린 동물의 사체 처리비가 아까워 퉁퉁 불은 몸뚱이를 다시 개고기로 팝니다. 한 달을 그대로 굶겨 죽이고, 살이 썩고 그 살에서 구더기가 들끓어도 치료조차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동물들이 그렇게 전락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무지한 동물애호가들이 시위탁 보호소의 <무조건적인 안락사 반대>를 외치는 동안 모든 유기동물들은 살아있는 채로 개고기로 전락되었습니다. 유기동물들이 개고기로 가는 것에 대해 담당공무원들이나 보호소주체들이 어떠한 도덕적 문제의식조차 갖지 않았던 건, 안락사만 반대하는  동물애호가들 때문이었습니다. 동물을 ‘애호하는 것’과 동물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은 너무나 큰 차이입니다. 우리 스스로, 단지 동물을 love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며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작년 초, 시위탁 보호소의 입찰을 받으러 시청으로 가는 도중,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또 다시<살생> 이라는  계율과 맞닿았으니까요…


이것이 옳은 일이라면 내게 맡기시고, 그렇지 않은 일이라면, 맡기지 말아 달라’…


이제 안락사를 내가 직접 결정해야 하는 일은 내게 있어 세상이 뒤바뀌는 것이었습니다.


8살 어릴 적 , 그제서야 내가 이제껏 내 친구들을 잡아먹고 살았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되었을 때,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너희들을 꼭 도와줄게 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그러던 어린아이가 이제는 동물보호활동의 또 하나로 직접 죽음을 결정해야 하는 일까지 하게 된다는 건,  너무나 괴로운… 내 안의 개벽이었습니다.




계약을 따내었고, 돌아오는 길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동물들을 위해 그것이 잘 되도록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 필요악을 내가 맡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또 한번 다짐했습니다. ‘보호되는 동안 그나마 조금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이 보호소가 모범적인 모델이 되어 전국의 보호소들을 개선시켜 나가자…’




행복한 둥지의 아이들은 모두 다 너무나 예쁩니다. 그 예쁜 눈이 감기는 것을 보고 난 두 차례의  안락사 때 까지 토악질을 할 정도로 심하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자신의 안위였습니다. 생의 종말에 대한 사색과 그 눈물조차도 죽어가는 생명들에겐 사치스러운 동정이었습니다.


내 값싼 눈물보다,  난 내 마음을 다잡으며,  가는 그들의 머리를 만져주며, 그들이 공포심을 갖지 못하도록, 눈치조차 채지 못하도록 편안하게 보내며 기도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을 위한 마지막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안락사>


누군가가 꼭 해야 할 일이라면


그것이 동물을 죽이는 살생의 행위라 돌을 던진다 해도,


나는 안락사의 혜택조차 받지 못한 이 땅의 가엾은 동물들을 위해


그 짐을 함께 지고 가겠습니다.


살생을 행한 벌이 내려진다 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들의 죽음이 한 치의 고통이라도 느끼지 못하고 갈 수 있도록,


마지막 가는 길, 가엾은 영혼들이  나의 작은 기도 하나로 좋은 곳으로 갈 수만 있다면


난 언제나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기꺼이 내 품에서 보내겠습니다…






단체에서 나가 비방을 일삼는 자,


난 그들이 했던 활동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거짓마음은 존중할 수 없습니다..


고의적 거짓정보와 속임수를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는 것은


그 스스로 죄책감을 들게 하며 그들의 양심을 짓누를 것입니다…


장수동의 노씨는 동물학대자였습니다.


그는 그것이 동물학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물학대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의 결과적 동물학대행위는


동물학대자 그 이상입니다.






비방하는 님들의 근거 없는 허위사실은,  일고의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시위탁 보호소 건만은 침묵할 수 없습니다.


행복한 둥지에서 지난 일년 간 지켜낸 아이들은 1000마리가 넘습니다.


그들을 다시 개고기로 전락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당신들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단체의 후원금이나 행복한 둥지의 위탁비 속에서도 내 월급은 단 한푼도 지급된 적이 없습니다. 차라리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면, 직원 한분을 더 채용하여 아이들에게 더 큰 보살핌이 가도로록 하는 것이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있는 다짐입니다. 가끔 운영진들은 이야기 합니다. 후원금을 모아 대표님 활동비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그러나 여유가 생긴다면. 그 또한 간사직을 고용하여 보호소가 아닌 더 큰 효과적인 동물보호활동을 하자는 것이 나의 주관입니다.


대상 선택을 잘못 했습니다. 금전적인 부분에 관해선,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는 것이 동물사랑실천협회입니다.




단체를 와해하려 비방하는 님들,


동물단체가 시위탁 보호소를 맡는 것이 불만인


유기동물을 희생해 가며 이익을 내는 익명의 탈퇴된 회원.


단/체/ 흔/들/기/  단지 목적이 그것이라면 틀렸습니다.


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뜻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척박해질수록 오뚜기 처럼 일어나


아무것도 없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각오가 언제든 되어 있으니까요…


고통에 찬 동물들의 신음소리가 이 땅에 들리는 한은 말입니다.









********


장수동 때의 그 결집된 힘은, 범법행위도 합리화시킬 만큼 강력하였습니다.


우리가 분열된다면, 제3, 제4의 지옥속의 동물들은 아무도 구해낼 수 없습니다.


이 땅의 동물들을 위해, 그들을 대변하기 위해 우리들은 더 현명해져야 합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말고 동물들과 대화를 하십시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십시오.


거기에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할, 우리가 가야 할 정답이 있고 그들이 그 답을 일러 줄 것입니다.


 


 


 


ps.  동물사랑실천협회는 2011년 현재 한 달 40-50여 마리의 동물들이 입양을 갈 정도로 적극적인 구조와 함께 입양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자체 보호소의 짧은 보호기간에 비해 1년 이상 보호되고 있으며 정성을 다한 치료와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간혹 안락사가 소수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상근 수의사에 의해 안락사가 진행됩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끝도 없이 밀려드는 위급한 구조요청으로 인해 우리가 운영하는 보호소도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다른 단체들이 아직은 비인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지자체 보호소로 동물을 보내도록 시민들에게 종용할 것이 아니라, 그런 곳으로 갈 수 밖에 없는 동물들과 학대받는 동물들을 조금이라도 나눠서 구조해 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래는 동물사랑실천협회가 2005년 2006년 시설을 임대하여 운영하였던


위탁 보호소 ” 행복한 둥지” 의 모습입니다.


 



 


 


깨끗한 청결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 수차례 청소를 해야만 했습니다.


 


  


겨울에는 난방용 전기판넬을 벽에 설치해 주고 바람을 막는 천막을 설치하였습니다.


 


 


고양이 보호공간 , 왼 쪽 벽의 나무부분이 전기판넬이 들어가 있던 곳입니다.


한 달 겨울철 난방비로 80~100 여만원이 소요되었습니다.


/ 위급한 동물들도 살릴 수 있다면 정성껏 치료해 주었습니다.


 


 


< 동물사랑실천협회가 운영하였던 시위탁 보호소” 행복한 둥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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