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어버린 뒷다리……다시 달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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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타고 있는 울콩이>
경기도 시흥의 한 공장. 어느 날 뒷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고 앞다리로만 걷는 개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공장주인 A씨는 개를 워낙 좋아해서 반려견이 여러 마리였고, 자기 공장에 등장한 개에게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습니다.
하지만 개는 사람을 몹시 무서워했습니다. 다가가면 멀찍이 도망을 쳤습니다. A씨가 먹을 것과 물을 챙겨주어도 개는 경계를 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른 개들과 친해지고 싶었는지 두려움을 무릅쓰고 공장에 들어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구조되기 전 백곰이의 모습>
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빨리 구조해서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A씨의 제보에 동물단체 케어 구조팀이 달려가 확인해보니 개의 상태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여럿 오자 개는 공장 한 구석으로 숨어버렸습니다. 개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렵게 구조를 해서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개는 오랫동안 몸을 압박하는 작은 케이지에 갇혀 산 것으로 보인다 했습니다. 개의 몸은 커지는데 케이지의 크기는 작다보니, 네모난 케이지의 모양대로 개의 몸이 굳어져 네모난 모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케이지 모양으로 뒷다리가 굳어진 백곰이”
태어나자마자 케이지에 넣어져 계속 그곳에 갇혀 있었던 개. 평생 그곳에 쭈그려 앉아 지내느라 한 번도 뒷다리를 펴본 적이 없었던 개. 때문에 개의 뒷다리에는 근육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고, 앞다리에 몸을 지탱한 채 이동을 했던 겁니다.
네모난 케이지 모양으로 굳어진 몸, 펴지지 않는 뒷자리를 가진 개가 스스로 케이지 밖으로 도망친 건지, 아니면 누군가 공장 앞에 버리고 간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수술을 한다고 해도 개는 평생 뒷다리를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순전히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함 때문에 불구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답십리 입양센터에 입소한 백곰이>
동물단체 케어는 현재 약 300여 마리의 동물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미 넘치는 보호 한계로 인해 이 개가 들어올 공간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상태의 개를 두고 올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케어의 입양센터 복도 한 켠을 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케어 입양센터 간사의 책상 밑과 복도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 개에게 ‘백곰’이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백곰이는 케어 입양센터의 문지기가 됐습니다. 센터에 누군가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큰소리로 짖으며 경보기 역할을 합니다.
사람 말을 잘 알아듣고 재주도 많습니다. 하반신 장애가 있는 개들은 배변할 때 온몸에 분비물을 묻히는 경우가 많은데, 백곰이는 덤블링을 하며 절대 자기 몸에 분비물을 묻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영리한 개가 작은 케이지에 꽉 낀 채로 지냈다니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남은 생을 바닥을 끌며 살아가야 한다는 게 안타깝고 미안합니다.
<아프기 전 울콩이의 모습>
“원인을 알 수 없는 척추 이상으로 불구가 된 울콩이”
울콩이는 유기견이었던 엄마 미뇽이, 형제 밤콩, 두콩과 길거리 생활을 하다가 함께 구조되었습니다. 입양센터에서 입양을 기다렸지만 입양이 되지 않아 보호소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호소 활동가가 울콩이를 유심히 보게 됩니다. 울콩이의 걸음걸이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제대로 걷지 못하고 뒷다리를 질질 끌었지요. 뭔가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울콩이를 급하게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원인을 알 수 없는 척추 이상으로 하반신 마비가 오는 거라 했습니다. 그렇게 울콩이의 뒷다리는 굳어버렸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답십리 입양센터에 입소해 휠체어를 타고있는 울콩이>
지난번에 소개한 진돌이, 앞서 소개한 백곰이, 그리고 울콩이…….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개들이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려면 대부분 유모차를 활용해야 합니다. 유모차에 태워 바깥 구경을 시켜주는 것이지요. 실내에만 있는 것보단 낫지만,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스스로 움직이는 자유를 누릴 수 없으니까요.
이렇게 활동이 제한되는 장애견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개들이 신 나게 달릴 수 있도록 장애견 휠체어를 제작해 기부하는 동물단체 케어 이철 이사입니다.
<유모차를 타고 있는 백곰이>
<새로 제작된 개용 휠체어를 타고 있는 진돌이>
“장애견 휠체어 기부, 인생의 가장 큰 기쁨”
이철 이사가 처음 장애견 휠체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0년 전. 우연히 길에서 누군가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개를 발견했습니다. 선천적인 장애 때문인지 후천적인 상해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개는 뒷다리를 쓰지 못했습니다. 이철 이사는 개를 데려와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개에게 ‘이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 출장길에 장애견 휠체어를 보게 되었고, 반려견 이슬이를 위해 상당히 고가인 휠체어(판매가 100만원 상당)를 구입했습니다. 덕분에 이슬이는 실내에서는 물론 야외에서도 활발히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4년을 살다가 이슬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싼 휠체어를 묵혀 두기가 아까워서 필요한 사람에게 기증을 하려고 했더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이왕이면 유기견에게 휠체어 사용 기회를 주고 싶어서 동물 보호소에 기증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보호소마다 휠체어가 필요한 개들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이후 이철 이사는 일본 휠체어 제작 업체와 협약을 맺고, 일본 출장을 갈 때마다 할인된 가격으로 휠체어를 제공받아 꾸준히 기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고, 비용도 너무 많이 발생했습니다. 결국 이철 이사는 휠체어 공장을 운영하는 분에게 자문을 구하고, 일본과 미국의 장애견 휠체어 제작 공정을 꼼꼼히 살핀 후 자체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설비를 마련하는 데 든 비용만 대략 1천만 원. 휠체어 부품을 마련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일본에서 완성품을 구입하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하다며 이철 이사는 웃습니다.
“정말 많은 곳에서 연락이 옵니다. 그만큼 다치고 아픈 개들이 많다는 얘기겠지요. 처음에는 휠체어 하나를 만드는 데 4시간 정도 걸렸는데, 요즘은 2시간 정도 걸립니다. 거의 매일 하나씩 만들죠. 힘들지 않냐고요? 전혀요. 제가 만든 휠체어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개를 보면 그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요. 자그마한 재능을 기부하는 것뿐이지만, 지금까지 제가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멀쩡한 개들도 많은데 굳이 장애견들에게 비싼 휠체어를 제공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는 질문에 이철 이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런 마음 자체가 이해가 안 돼요. 만약 본인이 다리를 못 쓰게 된다면 어떤 대우를 받길 바라는지 묻고 싶어요. 방치되길 원하는지, 관심과 사랑을 받길 바라는지. 그러면 답이 딱 나오잖아요.
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야외 활동을 해야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어요. 예쁘다고 키우고 아프다고 버리는 게 아니라, 같이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죠.”
현재 이철 이사는 동물단체 케어만이 아니라, 다양한 동물단체와 보호소에서 휠체어 기부 요청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는 이철 이사 덕분에 수많은 개들이 자신의 다리를 움직여 신나게 달립니다. 그 개들의 행복이 고스란히 이철 이사에게 전해집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눌수록 함께 행복해지지요.
우린 그들의 표정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늘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던 장애견들이 휠체어를 달고 난 후 신나게 달리던 그 표정을요.
장애를 가진 개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힐링 보호소 건립에 손길을 보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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