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펀딩] 사건, 그 후의 이야기 <케어TV> – 9화

지난 8화 – 죽음보다 더한 굶주림, 뼈만 남은 백구 에서 소개되었던 울랄라 소식입니다.


울라라는 방치되는 학대 속에서도 사람을 너무나 좋아하는 순둥이었습니다. 구조된 후 케어의 치료와 보살핌 속에서 위태로웠던 건강은 서서히 안정을 찾았습니다. 워낙 말랐던 터라 보기 괜찮을 정도로 살이 붙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몰라볼 만큼 상태는 호전되었습니다.

더 감사한 일은 울랄라에게 좋은 입양처가 나타난 것입니다. 울랄라는 평생 받지 못했던 관심과 넘치는 사랑을 해 줄 가족과 함께 우리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떠났습니다.


나올 수 없는 철창, 리트리버와 마주하다.

순간에 평생을 사로잡히는 때가 있습니다. 천진한 눈빛과 표정에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움직이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녹슨 철창, 그 앞에는 목을 매는 튼튼한 올가미가 늘어져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그동안 얼마나 무서운 광경들이 펼쳐졌을까요? 그런데도 꼬리를 흔드는 개가 있었습니다. 반가워하며 검은색 코를 철창 밖으로 내미는 리트리버 한 마리. 가장 무섭고 아픈 세상의 끝. 그곳에는 그럼에도 사람을 유난히 좋아하는 개가 있었습니다. 믿기지 않는 순수함에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손을 내밀어 까슬거리는 혀와 코를 만졌습니다. ‘절망의 반대가 희망은 아니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빛나듯 희망은 절망 속에 싹트는 거지.’ 문득 어딘가에서 읽었던 글귀가 떠올랐습니다.

절망의 반대가 희망은 아니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빛나듯 희망은 절망 속에 싹트는 거지.

현장

도살장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수원의 폐업한 번식장에서 갇혀있던 개들을 구출하던 도중 사람들에게서 농담처럼 이보다 더한 장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별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듯 말한 내용은 외딴 곳에 오래된 도살장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 진짜 막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평범한 말투, 하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장소를 물어 추정 위치를 최대한 좁힌 후 살펴볼 지역들을 정했습니다. 어디인지 확인하고 구해내면 될 거라고 되뇌었지만 이상하게도 몸에 한기가 들었습니다. 자꾸만 좋지 않은 예감이 떠올라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수원에 있는 야산, 깊게 파인 골짜기 아래에 은밀히 숨겨놓은 개농장이 있었습니다. 개들의 보금자리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발바닥이 푹푹 빠지는 철로 된 뜬장으로, 매우 오래되어 심하게 녹이 슨 상태였습니다. 그 안에는 여러 종류의 개들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방문한 이방인인 우리를 웅크려 앉아서 가만히 쳐다만 보던 개들. 여러 마리의 개들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도 조용했습니다.

장은 성인의 허벅지에 올 정도로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해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악스럽게도 바닥에서부터 그 높은 뜬장까지는 개들의 똥이 겹겹이 쌓여 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기둥처럼 세워진 배설물은 뜬장 위까지 도달해 개들이 갇혀있는 장소에 들이닥쳐 있었고 그것도 못 견뎌 밖으로 삐져나오는 중이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치우지 않은 걸까. 썩은 배설물의 냄새로 코를 베어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후각이 예민한 개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몸집이 가장 큰 누렁이는 배설물을 피해 그 큰 몸을 철장에 바싹 붙이고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듬성듬성 털이 빠지고 눈빛이 흐릿한 힘이 없는 개들은 부패되고 곰팡이가 시퍼렇게 선 배설물 웅덩이에 어쩔 도리가 없어 몸을 눕히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죽은 것은 아닐까? 개의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철창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제가 쳐다본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개는 백구였습니다. 백구는 지쳐있는 다른 개들처럼 배설물 더미에서 최대한 고개를 처박고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었습니다. 작게 혀를 차는 소리를 내서 백구를 불러보았습니다. 그러나 백구는 흠칫 놀라 뒤돌아보더니 이내 궁둥이만 보인 채 얼굴을 파묻었습니다. 사람을 몹시도 무서워했습니다. 그 뒤로 박제된 인형처럼 몸 한번 일으키지 않고 눈만 깜빡거렸습니다.

 

올가미

뜬장 앞에는 나무 기둥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그곳에는 굵고 더러운 밧줄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어떤 용도인지 보는 순간 이해할 수 있는 둥그런 원 모양의 밧줄. 개들이 보는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뜬장 속에서 개를 꺼내어 매다는 동선을 최소화한 위치였습니다. 배설물 위에서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개들. 그곳은 이곳을 알려줬던 사람들이 표현했듯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지독함, 세계의 밑바닥 그 자체였습니다.

이 감옥은 언제부터 생겼던 걸까요? 낡아빠진 뜬장 안에는 초록색 곰팡이가 낀 물과 먹이로 지급한 음식물 쓰레기가 담겨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저곳에는 죽은 개들의 털들이 가득했습니다. 머무는 것만으로도 병에 걸릴 것 같은 최악의 환경이었습니다.

경악스러운 마음을 다잡고 사진을 찍으려고 돌아다녔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맨 뒤쪽에 있던 뜬장 속에 리트리버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피가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꽃을 봤을 때 이런 기분일까요? 철창 속에 누워있던 리트리버는 저를 보자 눈동자가 빛났습니다. 꼬리를 흔들며 철창 밖으로 코와 발을 내밀어 반갑다는 몸짓을 열심히 했습니다. 마치 무슨 일을 하러 온 사람이란 걸 안다는 듯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던 리트리버 한 마리. 수많은 현장에서 개를 대하다 보면 개에게도 표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리트리버는 분명히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구출 작전

도살장의 1차 답사를 끝낸 후 사진 증거들을 가지고 수원 시청으로 찾아가 그 도살장을 없애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수원시청에서는 개 도살장의 기물들은 불법이기에 철거할 수 있지만, 폐업시킬 경우 그곳에 있는 개들을 보호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동물권단체 케어에서는 구출한 개들은 책임지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시청은 ‘케어’에서 그곳에 있는 개들을 구조하는 일이 끝나면 불법 도살장을 철거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그 개들을 그 지옥에서 꺼내는 일은 우리의 행동에 온전히 달려 있었습니다.

주변에 수소문한 결과, 그 개들은 모두 훔친 개들이나, 유기견들을 데려다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법적으로 개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하여도 개의 원주인을 증명할 길이 없는 이상 개들은 도살장 주인의 소유물, 재산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보아도 개들이 있는 현장은 비참하고 참혹했지만 방치는 동물보호법상 학대에 해당되지 않아 처벌할 수가 없었습니다. 개들이 겪는 괴로움과 고난을 아무리 표현하여도 법적으로는 도살장 주인의 허락 없이 개들을 이동시키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절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마저도 이 끔찍한 공간 속 개들 앞에선 죄스러워졌습니다. 고민을 하는 사이, 주인이 도축을 앞당겨 그곳에 남아있는 개들을 처분해버릴 것 같았습니다.

여러 번의 고민 끝에 캄캄한 새벽, 케어는 게릴라 구출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시간 싸움

다시 찾은 도살장은 여전히 더럽고 스산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며칠 전, 그곳에 있던 얼굴조차 보여 주지 못한 채 궁둥이만 내밀고 있던 가엾은 백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절로 밧줄로 눈길이 쏠렸습니다. 저 동그란 허공 속으로 얼마나 많은 개들이 빨려 들어갔을까. 백구는 그 장면을 얼마나 많이 봤던 것일까. 저곳에서 버둥대었을 모습들이 자꾸만 눈에 그려졌습니다.

굳게 닫혀 있던 철창을 조심스럽게 열었습니다. 그러자 짖지 않아서 신기했던 개들이 일제히 멍멍! 큰소리로 짖었습니다. 인형처럼 꼼짝없이 앉아있던 개들이 벌벌 떨며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는 반대쪽으로 향해 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개들에게는 철창문이 열리는 것은 도살이 이루어진다는 신호였던 것입니다. 서로의 등, 다리 너머로 머리를 향하며 되도록 철창문에서 멀어지려고 노력하는 개들의 모습은 처연했습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개들이 안심하도록 우리는 나지막이 이야기를 해 주며, 노래를 불러 주며 살며시 손을 내밀고 조용히 끌어 당겼습니다. 그리고 한 마리 한 마리, 우리가 가지고 온 트럭 위에 개들을 태웠습니다. 영문을 모른 채 마치 흐느끼는 듯 헉헉대는 개들, 겁에 질려 온몸을 공처럼 둥글게 만 개도 있었습니다. 불안이 극심한 패닉 상황에 개를 오래 놔두는 것이 좋지 않으므로 큰 소리를 내며 도망치려 애쓰는 개를 우선적으로 구출하는 철칙을 지켰습니다. 사람을 따르는 모습에 안심이 되어서 가장 마지막 순서를 리트리버로 정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조용히 8마리를 구출해 트럭에 태우는 순간, 멀리서 구슬프게 리트리버가 울어댔습니다. 너무나도 처연한 울음소리가 길게 목 놓아 울고 있었습니다. 리트리버는 다른 개들이 차에 태워지는 모습을 보고 안절부절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던 그 마음만큼이나 얼마나 실망이 컸을까. 자신은 데려가지 않는 줄 알았던 리트리버는 급기야 엄청난 소리로 울부짖으며 철망을 긁어댔습니다.

“바보야, 너를 두고 가겠니.”
리트리버 철장 앞으로 뛰어 갔습니다. 그제야 리트리버는 울음을 멈추고 한껏 밝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정말로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표정이었습니다. 인간처럼 상황을 추론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그 모습에 신기하면서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영리한 개가 그동안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하늘이 도왔는지 개들이 짖는 소리가 그렇게 컸는데도 도살장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서서히 풍경은 밝아지고 있었고 녹슨 뜬장들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그 안에 있었다는 것이 믿기기 않을 정도로 지저분하고 부식된 철로 된 우리, 우리는 공무원들이 어서 이 지옥을 철거해주길 바라며 자리를 떴습니다.


계속되는 지옥

우리나라 개들의 불행한 마지막, 곳곳에서 성업하는 개 도살장들. 동물권단체 케어에서는 수많은 도살장에서 개들을 구출하는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2011년 12월에는 과천의 야산에 있는 소규모 개농장에서 5마리의 개들과8 마리의 닭들을 구출하였습니다. 그냥 있어도 추운 날 배설물에 몸이 빠져 덜덜 떨고 있는 개들과 방치된 채 굶고 있던 닭들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죽을 것이 뻔하여 강행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출 사실을 알게 된 도살장의 주인은 특수절도죄로 저희를 고발하였고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12년 8월에는 50년의 역사를 가진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의 개도살 골목을 텔레비전 취재팀과 함께 고발, 이슈화시킨 후 구청에 철거를 요청했습니다. 여론의 압박에 당시 구청장이었던 홍미영 부평구청장은 개도살장의 자진철거를 유도, 도살장들이 모두 철거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덕분에 그곳에 있던 개 40여 마리를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부평구에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관내에 이런 일이 발생해 송구하다는 입장 발표와 함께 개도살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총 8개부서가 TF팀을 구성해 고발조치, 자진철거를 유도하였고 재발방지를 위해 더욱 철저하게 생명감시활동을 펼치겠다.“고 적극적인 의지와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냥 피켓을 드는 행위에서 나아가 법을 뛰어넘는 강제구출을 감행, 불법 행위로 처벌받은 케어의 활동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습니다. 시민단체에서 불법을 저지른다며 비난하는 목소리도 컸습니다. 그러나 케어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가치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대받는 동물들에 대한 법적인 압수제도가 없는 대한민국 현실 속에서 동물들은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었고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때때로 저희도 많은 사람들의 충고처럼 조금 더 냉철할 수 있다면, 조금 더 거리를 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한 순간들이 평생을 사로잡는 경우가 있습니다. 천진한 눈빛과 표정에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움직일 수밖에 없는 마음이 있습니다.

 

약 500마리, 지난 10년 동안 동물권단체 케어가 개도살장에서만 구조한 개들의 숫자입니다.

도살장의 개들에게는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가 먹이로 제공되며, 대부분의 개농장에서는 물은 아예 주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도축하고 남은 개들의 내장을 또 다른 개들에게 먹이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지붕이나 바람막이도 제대로 해 주지 않은 개농장도 많으며, 케어가 구조하는 가장 심각한 개농장들은 배설물을 치우지 않아 개들이 모두 재래식 화장실 같은 곳에 몸이 빠져 있는 식이었습니다. 살아있는 개들 앞에서 도축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어서, 개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동물권단체 케어는 도살장을 철거시키고, 남은 개들을 구출하고 있지만 이런 활동으로는 이 지옥을 끝낼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갇혀있다 도살된 개들의 고기는 기력 보충 음식으로 계속 팔려나갈 것이며 개들의 고통은 계속될 것입니다. 케어는 국민인식 전환을 위해 다큐멘터리를 제작,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지금까지처럼 법적인 고발을 통해 개고기 금지에 대한 법제화를 앞당길 것입니다.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멈추는 힘이 되기 위해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구출 이후

수원에서 구출한 8마리의 개들은 케어와 연계된 동물병원으로 긴급 이송, 건강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개들은 대부분 비위생적인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어 심각한 피부병과 탈수, 영양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치료를 위해 균이 잔뜩 묻은 개들의 털을 민 후 약물을 투여했습니다. 처음에는 의사 선생님의 손짓 하나 하나를 자신을 해하려는 몸짓으로 해석하고 패닉을 일으키던 개들도 차츰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깨끗한 잠자리와 물, 사료에 놀란 듯 움찔거리면서도 먹고 자는 정상적인 활동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수개월의 치료와 보살핌 덕에 8마리의 개들은 건강을 회복, 대부분의 개들이 입양되어 반려견으로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동물권단체 케어에서는 구출한 도살장에서 똑같은 행위가 되풀이 되지 못하도록 지금까지처럼 개농장이나 개도살장 철거에 앞장서서 운동, 장기적으로는 개식용이 금지될 수 있도록 국민인식전환을 위한 캠페인과 함께 법 제정 운동을 병행해 나갈 것입니다.

 

위급한 동물 곁에 케어가 있습니다.
동물권단체 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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