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펀딩] 사건, 그 후의 이야기 <케어TV> – 8화

죽음보다 더한 굶주림 뼈만 남은 백구

울타리 안에서, 굳게 잠긴 케이지 속에서 극심한 굶주림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삶을 끝내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학대와 무관심한 방치로 하루하루 끝없는 지옥 속을 헤매는 동물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학대와 방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몇 걸음 뗄 수도 없을 정도로 짧게 매어진 줄과 서있는 것조차도 힘겨워 휘청거리는 걸음

종이처럼 가벼운 개

저벅 저벅, 우리의 발소리에 겨우 숨만 몰아쉬며 쓰러져 가던 백구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습니다. 누구 하나 찾아오는 이가 없을 것 같은 적막한 장소, 사방이 휑하니 뚫린 벌판 위 녹슨 컨테이너 박스, 그 밑에 앙상한 백구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삭막한 풍경보다도 더 스산했던 백구의 몸. 갈비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앙상한 개의 허리는 제대로 펼 힘도 없는지 둥글게 휘어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길었을지 헤아릴 수도 없는 외로움. 낯선 이의 발자국 소리마저도 반가웠을까요?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하던 백구가 사력을 다해 일어나더니 우리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컨테이너 집 사진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도 사람에게 애정을 표현하던 하얀 개. 생각보다 마음이 앞서 백구를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큰 몸집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종이처럼 가벼운 개.
그날 우리는 백구의 고통을 바로 멈춰주기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현실을 끝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더 이상은 1분 1초도 미룰 수 없었습니다. 하루 뒤, 한 달 뒤를 이야기하기엔 당장이 너무나 잔혹했습니다.

턱 밑까지 죽음에 삼켜져 있던 개

백구는 인천 강화도의 인적이 드문 외지에 사는 어느 가난한 할아버지의 개였습니다. 어렸을 때 어미에게서 떼어져 할아버지에게 온 후 백구는 수년간 홀로 이곳에 묶여서 살았습니다. 두 걸음만 걸으면 조여 오는 짧은 목줄에 묶여있어 성인 남성의 팔 하나 정도 밖에 안 되는 거리, 백구가 움직일 수 있었던 공간은 딱 그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무관심 속에서 굶어 죽어가던 하얀 개, 백구는 마지막 숨을 힘겹게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동물권단체 케어에서 백구를 구하러 갔을 때, 현장에는 빈 술병들이 이리 저리 녹슨 컨테이너 주변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개의 밥 그릇은 언제 채워졌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로 바싹 말라있었습니다.
마르다 못해 휘청거리는 하얀 개, 백구를 구해야 했습니다.
주인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마주하자마자 훅 풍겨오는 술 냄새, 이른 오후였지만 어르신은 서서 얘기를 나누는 것조차 버거워할 정도로 만취 상태였습니다.
마을 사람들 이야기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유명한 술꾼이었습니다.

고단한 삶과 외로움을 지우려는 듯 사시사철 술만 드신다고 했습니다. 몽롱한 정신으로 세상을 외면하던 할아버지, 그렇게 어르신은 술로 세상을 잊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백구도 잊었던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동물단체 사람임을 밝히며 백구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개를 데려가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망설이시는 듯하더니 “가져가” 라며 생각보다 쉽게 포기했습니다. 혹 할아버지의 마음이 바뀔 새라 개를 데려가면 어떻게 치료하겠다고 얼른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걱정 안 한다”라고 짧게 답하고서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철장에서 죽어가던 수많은 개들

예쁘고 귀여운 어린 강아지, 기품 있는 순혈종 강아지들을 판매하는 샵의 화려한 모습 뒤에는 전혀 다른 얼굴의 진실이 끔찍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움막 같은 장소, 평생 좁은 철장 속에 갇혀있다가 교미를 할 때에만 잠시나마 걸어볼 수 있는 종견들.
끝없이 이어지는 임신과 출산, 새끼를 낳은 후에는 젖을 물려보는 것도 잠시 강아지들은 쥐도 새로 모르게 어미로부터 떼어져 낯선 곳으로 뿔뿔이 팔려 갑니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임신. 하나의 생명체가 아니라 새끼를 낳는 기계로만 살아가야 하는 삶. 그 삶에는 햇빛도, 건강한 먹이도, 신선한 공기도, 마른 잠자리도 없습니다. 칸칸이 층층이 들어찬 철장 안에는 지독한 고통만이 있었습니다.

지옥보다 더 깊은 지옥

살아있는 것이 지옥인 장소, 번식장. 그러나 그 곳에 더 깊은 지옥이 펼쳐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번식장이 폐업하는 경우입니다. 현재 애완동물 시장은 번식장과 판매 업소들의 난립으로 과잉 경쟁을 벌이는 상황. 수요보다 넘치는 공급으로 인해 강아지들이 헐값에, 무료로, 분양되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그 여파로 번식장과 판매업소의 폐업이 속출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폐업할 때 동물을 다 분양한 후 문을 닫는 번식장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동물로 돈을 벌었으면서도 동물에게 돈 한 푼 쓰는 것을 아까워한 주인들은 남은 동물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부에서 추산하는 강아지 번식장은 전국에 약 1천여 개.
동물권단체 케어에서는 번식장이 폐업하며 방치한 동물들을 긴급 구출했습니다. 출동한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믿기지 않는 현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굶어 죽어 가죽만 남은 끔찍한 사체들, 사체의 배나 등 부분은 쥐들이 파먹어서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간혹 먼저 죽은 친구들의 몸뚱이를 뜯어먹으며 살아남은 소수의 동물들도 있었습니다. 죽은 동물도, 산 동물도 겪어서는 안 될 일을 겪는 장소, 폐업한 번식장은 어둠의 심연 그 자체였습니다.

죽음보다도 더한 이 고통의 책임자인 번식장의 주인, 그러나 아무런 배려 없이 동물들을 철장 속에 가둔 채 사라진 번식장 운영주를 어렵게 찾아내도 굶겨서 죽인 행동의 의도성을 증명하기 전에는 동물학대로 처벌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을 일으킬 수 없도록 번식장을 운영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하는 일도 불가능했습니다.
주인들의 “실수였다”는 한 마디, “다른 어떤 급한 일이 있었다”는 몇 마디 변명이면 동물들에 대한 무참한 학대와 살해를 사고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수십 마리의 동물을 죽인 사람에게 경고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엉성하고 나약한 법, 이것이 대한민국의 동물보호법이었습니다.


시위용 퍼포먼스로 동물을 굶겨 죽이다

동물보호운동가로 활동한 지 15년 차, 잔인한 학대 현장을 여럿 마주하게 되면서 나름 정신무장이 되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날 때마다 칼로 찔리는 듯 두고 두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그런 일들 중 하나입니다.

엉성하고 나약한 대한민국 동물보호법

흔들리는 소

소들의 몸은 사시나무 떨 듯 떨리고 있었습니다. 추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아사 직전의 몸 근육들 전체가 의지와는 다르게 경련하며 떨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도착하기 바로 직전 죽어버린, 온기가 남아있는 소는 오래 전 말라비틀어진 소똥 더미 위에 조용히 누워 있었습니다. 굶주림에 지쳐 최후의 사투를 벌이다 쓰러진 40여 마리 소들의 사체가 그렇게 여기 저기 뒹굴고 있었습니다. 아직 죽지 않은 누렁 소는 너무나 배고픈 나머지 연신 흙을 파서 씹어 먹었습니다. 무려 2개월, 그동안 소들은 오로지 물만 먹으며 버티다 죽어갔습니다.

지난 2012년 1월 4일, 순창의 한 농가에서 정부 정책에 항의하기 위한 시위 퍼포먼스로 소들을 집단으로 굶겨 죽이고 있다는 기사가 짤막하게 인터넷에 올라왔습니다. 이미 수십 마리가 죽었고 시위 퍼포먼스는 현재도 진행 중이라는 기사였습니다. 사료 값이나 돌볼 여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퍼포먼스로 동물들을 죽인다니 벼락에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울 겨를도 없이 다음날 바로 순창으로 내려갔습니다. 멈춰야한다, 퍼포먼스 때문에 죽어가는 소들을 살리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신문에 나온 그 농장, 착한 눈망울을 가진 수십 마리 소들의 죽음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수많은 사체들 속에서 흔들리며 버티고 있는 소들의 모습. 오랜 굶주림 끝에 한계에 다다른 소들을 본 이상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그 죽음의 감옥 속에서 무조건 빼내기로 남편과 저는 마음먹었습니다. 간절하고 간곡한 마음으로 농장주를 만나 설득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에 걸쳐 이야기하여도 농장주는 나라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며 소들을 마저 굶겨죽이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잘못된 종교처럼 꺾이지 않는 확고한 의지, 소들을 잔혹하게 죽여서 그 잘못으로 정부를 다시 한 번 더 규탄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설득이 불가능한 상황, 소송을 당할 각오를 하고 강제로 울타리의 문을 뜯고 열어버렸습니다. 문이 열리자 흥분하며 비척이는 걸음으로 나오는 소들. 다급한 마음에 소리쳤습니다.

“빨리 나가서 풀이라도 마음껏 먹어!”

그러나 소들이 울타리 밖을 나오자마자 제일 처음으로 했던 행동은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른 행동이었습니다. 그 행동은 동물보호운동을 하며 저에게 가장 가슴 아픈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소들이 울타리 밖을 나와 향했던 곳은 먹을 수 있는 풀이 있는 평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향했던 곳은 갇혀있던 곳 맞은편에 있던 빈 사료 포대 종이. 자신들이 매일 먹던 사료의 포장지,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보였던 사료의 냄새가 배어있었던 그 사료 포장지는 그들에겐 얼마나 간절했던 걸까요. 사료가 없어서 빈 포대 종잇장을 우걱우걱 씹어 먹던 소들의 그 착한 눈빛이 저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동물권단체 케어는 굶겨 죽이는 학대자로부터 피학대동물인 순창의 소들을 법에 정해진 대로 안전한 곳으로 격리조치 이행을 주장, 지자체와 정부를 상대로 지속적으로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을 설득하여 사료를 먹이기로 하고 격리조치 전까지 임시로 사료를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저런 핑계로 소들의 격리를 바로 실행하지 않고 계속 방관했습니다.
그 사이 소 열 마리가 더 굶어죽는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사료 지원은 가능했지만 주인이 소들에게 제공할 것을 강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아사로 죽는 소들의 수가 늘어갔습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구출을 강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살아남은 소들을 트럭에 태워 굶겨죽이겠다는 주인으로부터 피신시켰습니다. 소들은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조용히 트럭에 올랐습니다. 울음소리를 멈춘 소들의 이동, 굶어서 죽은 수십 마리의 소들의 사체가 나뒹굴던 그곳에서 ‘그동안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총 80마리 중 겨우 14마리, 그 잔혹한 농장에서 굶주려죽지 않은 생존한 소의 수입니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주인의 허락 없이 소들을 강제로 집단 구출하는 행동은 불법 시위로 처벌을 받으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또 이로 인해서 주인의 행동이 가혹하다는 여론이 일어나면서 동물보호법 개정을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인정되지 않았던 동물을 굶겨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가 동물학대로 규정, 동물을 굶겨서 죽는 현장이 적발될 시 지자체가 긴급격리조치를 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법이 그제야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농장동물이 첫 번째로 구출된 사건이자, 농장동물들에게 동물학대 행위가 적용된 첫 사례였으며 정부당국이 동물학대로 학대자를 고발한 첫 사례로 대한민국의 동물보호정책에 변화를 일으킨 한 걸음이었습니다.


굶어서 죽어가던 개 백구는 할아버지에게 양도받은 후 바로 동물병원으로 이송, 심각한 영양 부족과 심장사상충으로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에 돌입했다. 그리고 백구에게 앞으로는 즐거운 일만 생기라는 뜻에서 울랄라 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케어에서는 수많은 폐업 펫샵과 번식장을 방문, 방치된 동물들의 긴급 구조 활동을 펼쳤다. 불법적으로 운영되는 번식장 수는 약 3천여 곳 정도, 우리나라 경매장에서 거래되는 개들의 수는 한 달 평균 약 2만여 마리에 달한다. 다행히 케어와 같은 동물단체의 감시에 포착되어 아사 직전 구조한 동물들도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둔 동물들은 그 뒤로 무수히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 꼭 다리를 자르거나 불에 태워야지만 학대가 아니다. 굶어 죽은 후 쥐들에게 뜯겨먹은 개의 사체, 다른 개의 시체를 먹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철장 속의 개들, 방치라는 두 글자 뒤의 고통은 어떤 행동보다도 폭력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케어에서는 정부 항의 퍼포먼스로 소들을 아사시켜 죽이던 농장 주인에게서 강제로 살아남은 소 14마리를 구조했다. 그러나 오랜 굶주림의 후유증으로 상태가 좋지 않아 결국 11마리가 추가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살아남은 소는 3마리 뿐. 살아남은 소들은 농장으로 입양 되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도살되지 않고 자유롭게 여생을 보낼 것이다.

동물권단체 케어에서는 동물을 굶겨서 죽이는 행위를 막을 법 제정 운동을 진행, 2013년 ‘고의로 사료 또는 물을 급여하지 않아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가 동물학대에 포함되었다. (일명 순창 소 아사 방지법)

동물권단체 케어에서는 죽은 후 처벌이 아닌 동물에게 방치 등의 위해 행동 처벌이 가능한 법 개정을 주장, 동물이 살아있을 때 보호해주는 동물보호법을 요구한다.

어떤 생명이든 삶은 단 한번 뿐이다.
케어에서는 앞으로도 울타리 안에서, 철장 안에서, 그리고 농장 안에서 방치되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고발, 그들의 죽음의 행렬을 막는 손길이 될 것이다.

가장 분노하는 목소리가 될 것이다.

위급한 동물 곁에 케어가 있습니다.
동물권단체 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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