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 인터뷰 < 국민일보 >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 “가축 사육 환경 바꿔야 구제역 없앨 수 있죠”










[2011.02.09 18:25] 트위터로 퍼가기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박소연(40)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를 만나기 전에 점검해야 할 에티켓이 있다. 가죽 신발과 가방은 운동화와 천 가방으로 대체하고 춥다고 행여 털 달린 점퍼나 코트를 입었다면 갈아입고 나올 일이다.

아침 기온이 영하 12도인 지난달 31일 코듀로이 재킷 차림으로 당당하게 박 대표에게 인사를 했다. 서울 필운동 협회 사무실이 세 든 건물 2층 커피숍. 신입 활동가 6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먼저 안부를 물었다. 박 대표와는 2007년 이맘때 부인과 다투다 키우던 고양이 두 마리를 홧김에 아파트에서 던져 죽인 한 남편의 사건을 취재하면서 만났었다. 당시만 해도 동물 학대가 지금처럼 큰 이슈로 부각되지 않던 때다.

“구제역 때문에 특히 바빠요. 설 기간에도 현장에 다닐 건데요. 생매장 현장이 너무나 충격적이에요. 마지막 천안에 갔을 때 처음으로 생매장을 안 하는 현장을 발견했는데 농식품부 장관이 그날 방문했다더라고요. 구제역을 없애려면 집단사육환경을 바꿔야 합니다.”

지난해 단 하루도 쉬어 본 날이 없고, 올해는 연초부터 일이 몰린다. 여전히 고소고발 사건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최근엔 개를 연쇄 도살한 고등학생들이 구속되는 사건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2002년 동물사랑실천협회를 설립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동물 학대 현장엔 늘 박 대표가 있었다. 현장은 늘 참혹했다. 이번에 발각된 고등학생들이 저지른 일은 특히 더했다.

“죄질이 너무 나빴어요. 경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화가 났을 정도니까요. 학생들을 만나서 고발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얘기했어요. 대신 너희들이 한 일을 인정하고 사체를 찾아오라고 했죠. 찾아오지 않았고 인정하지도 않았죠. 돌아간 뒤에는 되려 제보학생이 누군지 찾아오라고 했대요. 그 학생들이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다닌 건 50마리가 계획이라고.”

부모들은 박 대표와 협회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주동 학생 2명에게 동물학대 혐의로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동물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만 떠올리고 동물보호운동에 뛰어들었다간 큰코다친다. 힘들고 거친 일이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 성향 자체가 폭력적인 경우가 많아요. 맞아도 봤죠. 식칼을 들어 보인 사람도 있었고. 청부살인 협박도 받아봤고.”

그녀가 운동가로 30대를 살아가면서 겪은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루 4시간만 자고 끼니도 거른 채 전국을 중고 코란도로 누비며 학대 현장을 찾아다녔다. 돌아오는 건 욕설과 폭행, 온갖 모욕이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정신병에 걸리거나 자살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 생각도 들었죠. 너무 힘든 상황을 겪어서 어떻게 살았나 싶네요.”

그녀도 한때는 예쁜 배우였다. 정웅인 류승룡 김미혜 등이 그녀와 함께 무대에 섰던 배우들이다. 22세 나이에 뮤지컬 오디션에 합격해 10년을 배우로 살았다. 마지막 무대는 류승룡씨와 함께한 작품 ‘난타’였다.

“처음엔 병행해 보려고 했어요. 도저히 할 수 없더라고요. 바로바로 뛰어 나가야 하는 일, 눈에 보이는 일이 너무 많으니까 이것부터 해결해야지 하다 여기까지 왔네요.”

그토록 좋아했던 무대를 떠난 지 10년. “이렇게 되고는 한 작품도 안 봤어요.”

한숨 섞인 말소리였다. 공연을 보러 가면 마음이 편치 않았고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 싫었다. 그녀는 대신 심야 영화로 마음을 달랬다.

화제를 돌렸다. 언제부터 동물을 사랑했느냐고. 그랬더니 활기를 찾는다.

“엄마 따라 재래시장에 갔는데 정육점에 뭐가 걸려 있는 거예요. 팔 다리가 붙어 있어요. ‘엄마 저게 뭐야’ 물어보니까 엄마가 ‘저게 네가 먹는 고기야’ 내 친구를 죽여서 먹고 살았구나. 길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어요.”

여덟 살 때 일이다. 그때부터 채식을 했다. 채식하는 어린이를 어른들은 편식한다고 꾸짖었을 것이다. 부모님은 밥상에만 앉으면 박씨를 타박했다. 계란찜 정도만 가끔 먹을 뿐 오로지 채식만 고집한 박씨. 버섯과 고사리에서도 고기 맛이 느껴진다며 안 먹던 아이였다.

박씨는 서울 신당동과 장충동에서 살았다. 딱히 자연친화적인 환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물을 친구로 생각했고, 늘 밥솥에서 밥을 퍼다 동네 개들에게 나눠줬다. 버려진 개를 데려와 키우기도 했다.

“굉장히 잠이 많은 어린이였는데 엄마가 저를 깨우는 방법이 ‘텔레비전에 동물 나왔다’였어요.”(웃음)

동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고, 대학에 가고 배우가 된 이후로는 돈을 많이 벌어서 동물단체에 후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애초에 운동가가 될 생각은 없었던 그녀다.

6만여명의 회원이 가입한 동물보호 관련 최대 단체 대표가 되어 버린 박씨.

“이제는 책임감이죠.”

사실 후회도 했었다. ‘하나님이 다시 태어나게 한다면 어떻게 할래?’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녀는 ‘안 할래요’라고 답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사는 게 좋은 것, 아니 옳은 일이란 생각이 든다.

“동물은 사회적으로 생물학적으로도 최약자잖아요. 인간에 대한 복지도 많이 부족하지만 먹고살게 끔은 해주더라고요. 동물은 하지만 여전히 착취의 대상이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요즘 성경 말씀을 곰곰이 되뇌어 본다.

“동물도 하나님의 피조물이잖아요. 그럼 보호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죠. 그런데 다스리라는 말씀이 있어요. 그 말씀 때문인데, 임금이 백성을 다스리듯이 다스리라는 의미이지 잡아먹고 착취하라는 건 아닐 거 같단 말이죠.”

뮤지컬 배우로 10년,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로 10년을 보내고 인생 3막을 여는 박씨. 다음 10년은 활동가 양성과 배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좋은 활동가들을 배출해 서포트해 주고 싶어요.”

쉴 틈 없는 일상, 하루 100통에서 많게는 400통의 전화를 받다보니 벨소리 환청까지 들리는 그녀다.

글 이경선 기자·사진 홍해인 기자 bokyung@kmib.co.kr

■ 동물사랑실천협회

2002년 8월 박소연씨와 7명의 활동가가 설립한 단체다. 초기엔 중고차 3대가 사무실 겸 이동수단이었다. 회원 2000여명으로 시작했다. 2006년 반려동물 보호소를 설치했고, 서울 충정로에 협회 사무실도 얻었다. 충정로 일대 재개발로 서울 휘경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가 지난해 10월 필운동으로 이사 왔다. 현재 회원 수는 6만여명. 실효성 있는 동물보호법 개정과 반려동물 보호문화 정착, 인도적인 유기동물보호소 설치, 개식용 금지 법안 입법 등이 협회가 추구하는 목표다.

협회 활동이 왕성해지는 것과 맞물려 법 제도 개선도 이뤄지고 있다. 2008년 동물 학대시 20만원에 그치던 벌금이 500만원 이하로 상향 조정됐고, 지난해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동물을 상습적으로 학대하면 형량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 징역형 규정은 올해 하반기부터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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