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동물농장, 차라리 구조를 하지마라! -일련의 방송용 동물구조와 학대-

 


 


 


TV동물농장, 차라리 구조를 하지마라!





 



 


황구 찐자, 트럭 개 사건, 아기 고양이 방치와 죽음,


그리고 동물농장의 최근 동물구조활동에 대하여….


 


 



 


 


 



동물농장이 해도 너무 한다. 갈수록 가관이다. 그럴듯한 그림, 감동적인 장면을 위해 위급한 동물들은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심각하게 이용되고 있다. 마치 시사프로를 모방한 듯 욕심을 부리지만, 자극적인 장면 연출로 시청률만 높이겠다는 욕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동물농장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원하는 자극적인 그림을 얻기 위해 장시간 동물을 방치하는 행위, tv 속 성우의 정형화된 감정 없는 목소리, 가끔씩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터져 나오는 mc와 방청객들의 기계적인 추임새 또한 프로그램 속의 위급한 동물의 상황과 전혀 맞지 않아서 여간 시청자들의 심경을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보여주는 구조장면들로 인해 동물농장에 대한 시민들의 간절한 구조요청은 동물보호단체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동물농장으로 제보되었다가, 소위 방송용 <꺼리> 에 미치지 못하거나 반복되는 비슷한 사연들은 동물농장 측에서 폐기처분해 버리기에 구조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 후에는 잊혀진 채 누구도 그 동물을 구할 수 없게 된다.


 


 



2011년 10월 9일 방영된 ‘트럭 개’들을 보고 문제의 트럭을 찾아보고자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장소라도 알려 달라고 하였더니 못 가르쳐 준단다. 개장수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동물농장은 아직도 무엇을 잘못한지 모르는 듯 하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미 2009년 10월 <욕지도 섬에 버려지는 개들> 편에서 많이 본 행동이 아닌가.


 


 


 



1. 욕지도 섬에 버려지는 개들


 



 


 


욕지도 섬에 버려지는 개들 편이 방영된 후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 있었다. 욕지도 섬의 산 속, 한 폐가의 묶여진 개들이 전부 잡아먹히는 개들이라며 아무런 근거도 없이 바짝 시청자들의 마음만 힘들게 하고는 정작 개들은 그대로 둔 채  돌아왔다, 그 때도 지금의 동물자유연대란 단체가 방송과 함께 갔었다. 고정 출연하는 여성 수의사도 그때부터 동행했다.


 


 


그 후 동물을 사랑하는 동물농장 애청자들은 10여 일 동안 울었다. 동물농장 게시판에서 울고, 직접 방송국에 전화를 해서 울었다. 10일 동안 울며 구해 달라고 하소연을 해도 방송이 꿈쩍을 하지 않으니, 관계도 없는 우리 동물사랑실천협회에 전화를 걸어 와 욕지도 산 속의 개들을 구해 달라며 또 울었다.


 


 


욕지도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나는 동물농장에 전화를 걸어 ‘시청자들의 요구가 빗발치는 듯 한데 구조하러 안 가느냐’ 물었다. ‘안 간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 당시 방송에서 여성 수의사는,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자 개들이 심하게 경계를 하며 뒷걸음치는 지극히 당연한 모습에서 아무런 도살의 근거도 없이 “ 얼마나 많이 개들 앞에서 개들을 도살하였으면 사람만 봐도 이렇게 무서워하겠느냐” 는 말을 했다.


 


 


모든 시청자들은 그 말을 믿었고, 그래서 분노했다. 수의사도 가고, 동물보호단체가 갔는데도 그렇게 심각하다고 말한 개들은 전혀 구하지 않고 허무하게 돌아온 그 사실에 대해서…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동물농장팀을 뒤로 하고, 동물사랑실천협회가 가보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가라는 것인지, 가지 말라는 것인지- 동물자유연대의 간사 한 사람은 “ 그 산 속 폐가의 개들이 문제가 아니다. 그 근처에는 100마리가 넘는 개농장이 있다. 그 개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글을 하루 정도 올렸다가 스스로 삭제를 하기도 했었다. 100마리 개가 근처에 있으니 그 폐가의 개들만 구할 거라면 가지 말라는 것인지, 이왕 간 김에 100마리까지 구해 달라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문장이었다. 직접 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욕지도에는 개농장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근처의 100마리라는 개들은 있지도 않았다.


 


 



나를 움직인 건, 한 할머니의 전화였다. 아주 먼 지방에 사신다는 한 할머니는 새벽 6시,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아셨는지 전화를 걸어 와서 흐느끼셨다. “제발 저 개들을 구해 줘요. 내가 이 나이에도 마음이 너무 아파서 살 수가 없어요…”


 


 



우리가 출연한 내용이 아니고 또 TV 를 보지 않는 난, 대체 뭐가 뭔지도 알 수 없었고, 다른 동물보호단체가 간 것이라 갑자기 우리 단체의 접근이 불편한 상황이 될 것이 뻔하였지만, 사람들의 요청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일단 가보자고 작정하였다. 방송에 나온 아이들이 10마리 미만이었으니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면, 무조건 업어오자는 생각으로 봉고차를 가지고 갔다.


 


 


차는 배에 실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섬이었고, 그 때 새삼 깨달은 것이 있었다.


당초 방송은 욕지도 섬에 버려지는 개들이란 내용을 방영했는데, 섬 안에서 살다 버려진 개들이 아니라, 육지에서 섬으로 개들을 데리고 들어와 버리고 간다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과연 그럴 사람들이 있을까. 말 못하는 동물을 버리고자 한다면, 굳이 큰 비용을 들이고 노출되기도 쉽게 배에 개를 태워 데리고 들어와야만 하는 이곳에 구태여 버리고 가는 수고를 불사하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육지에서도 얼마든지 사람 눈에 띄지 않게 버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혹시 섬에 살다 개를 놔두고 육지로 떠나는 사람 몇이 있던 것은 아닐까.


 


 



어찌 되었든 버려진 개들은 방송의 컨셉과는 다르게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리고는 모자란 구성을 맞추기 위해 산 속 폐가의 먹혀진다는 가상의 설정으로 개들을 아주 심각한 모습으로 내 보내고는 이번 트럭 개들처럼 무책임하게 돌아왔다. 어찌 되었든 우리가 가 본 욕지도의 이야기는 동물농장에서 보여준 모습과 전혀 반대였다. 아저씨는 개를 잡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아닌 오히려 그 반대의 사람이었다. 시청자에게 걱정과 구해주지 못하는 울분만 가득 쌓이게 하려는 완벽한 설정이었고 편집이었다.


 



방송과 완벽하게 다른 모습에서 우린 할 말을 잃었고


우리마저 아저씨를 악인으로 만들 수 없어 사실을 영상으로 찍어 올렸다.


그 후 우리와 동물농장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자세한 이야기는 길어서 여기서 다 하지 않으련다. 욕지도 섬을 다녀온 동물사랑실천협회의 구조후기는 여기서 자세히 볼 수 있다.


http://fromcare.org/our/notice.htm?code=notice&bbs_id=7739&page=1&Sch_Method=title&Sch_Txt= 욕지도&md=read


 


 


 




동물농장은 구조단체가 아니다. 그래서 무조건 동물을 구조할 의무나 책임은 없다,


하지만 오랫동안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은 동물농장을 보호단체로 착각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보호단체의 구조 활동을 따라 다니며 쵤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과 내용을 미리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짜 맞춘다. 진정 그 동물을 배려하는 구조활동은 없고, 피디의 방향과 계획대로 가는 설정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동물농장이 나타나면 모두 구조해 주는 것으로 오인하기에 충분했으니, 방송이 일말의 도덕적 책임을 느낀다면 적어도 시청자들을 상대로 ‘보여준 동물만큼은’ 구조해야 했다. 기대감만 잔뜩 심어 놓은 채, 자극적인 장면으로 시청률만 상승시키면 되는 것이 아니다. 동물농장을 사랑하고 기대하고 대리해서 만족하는 시청자들을 저버려선 안 된다. 바로 그 시청자들 때문에 동물농장이 장수프로로 확고해질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내가 동물농장에 가끔 출연하여 구조를 도와준 것도 10년은 되어 가는 듯 하다.


욕지도 사건 이후로 최근 몇 년 새 동물농장과는 구조작업을 하지 않지만, 초기 동물농장은 이렇지 않았다. 보호단체와 상의를 하여 어떤 방법으로 구출할 것인지를 협의하였고, 보호단체의 활동과 구조 방향을 존중해 주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동물농장의 피디들이 모두 교체되며 동물농장인지, 동물학대 농장인지, 엽기/호러물 제작사업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전락하였다.


 


 


 




2. 골수염으로 고통받던 곰돌이를 길바닥에 그냥 두고 오다.


 


 



 


 


2011년 2월 진주시, 매우 추운 날씨였는데 어린 강아지 한 마리가 박스에 사료 한 봉지와 함께 한적한 곳에 버려져 있었다. 어린 강아지의 다리는 누군가가 고의로 끈을 조이듯이 묶어 놓아서 덜렁거리며 끊어질 정도로 괴사되었는데 버려진 상태에서 보름 이상이나 있었고, 동네 사람들은 밥만 줄 뿐 치료비가 많이 들 수도 있는 아픈 강아지를 아무도 데려가려 하지 않았다. 이것이 동물농장에 제보되었으나 동물농장 팀은 진주까지 내려가서 강아지를 보고는 촬영용으로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는지 그냥 두고 돌아가 버렸다. 강아지는 매우 심각한 상태였는데 동물농장이 돌아간 뒤로 일주일이나 더 그렇게 혼자서 방치되어 있었다.


 


 


 


동물농장팀의 한 작가가 한참 후에 내게 전화를 걸어 와서 그 강아지를 구해 달라고 했다.


방송용으론 적합하지 않아 구조하지 못한다고,


 





 



 


 


 



동물농장 고정 출연인 동물자유연대와 여성수의사는 대체 방송에 나오는 것 외에 무엇을 도와 주고 있는지, 동물농장에 출연하는 것으로 병원 영업이나 단체 후원이 상당히 많이 늘어 날 텐데, 방송에 나올 수는 없지만 긴급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동물들을 대신 구호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어쩌다가 출연도 하지 않는 우리 단체에 연락을 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렇게라도 그 어린 강아지를 살리고 싶어 남 몰래 내게 전화를 걸어 준 그 작가가 고마웠다.


 


 


밤늦게 연락을 받자마자 다음 날 바로 지방의 회원을 통해 구조하였고 오랜 기간 동안 치료 후 현재 동물사랑실천협회 구조팀 간사가 직접 입양하여 기르고 있다. 조금 더 빨리 구조하여 손을 썼더라면 다리 중간까지는 살릴 수 있었을 거라고 수의사는 말했다. 당시 골수염까지 진행되었던 곰돌이는 허벅지 아래로는 절단되어 현재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3. 숫컷을 암컷으로 바꿔 어미처럼 보여지던 옥상 고양이


 


죽은 어린 고양이들의 사체를 떠나지 못하여 아기 고양이들이 있는 옥상에 가서 매일 잠을 잔다는 어미 고양이,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에 감동으로 남은 것은 분명하였으나 마지막 그 고양이의 뒷모습은 수컷의 고환이 분명하게 보였다. 동물농장에 고정 출연 중인 여성 수의사는 수컷인지 확인도 안 하고 어미라고 단정하며 감동적인 멘트만 연신 해댔다. 수컷은 방송용으로 촬영되는 기간 동안 건강 상태에 대해 어떠한 검진도 받지 않았나 보다. 제대로 고양이를 보기라도 했다면, 어미인지 아닌지는 금새 알 수 있었을텐데…


 


 





4. 구조되어야 할 고양이는 어디로?


 


긴급하게 구조되어야 하는 고양이가 있었는데, 구조가 필요한 고양이가 아닌 비슷한 다른 얼굴의 고양이를 구조하고는 처음 고양이라고 내보냈다. 방영 후 이를 금새 눈치 챈 시청자들은 처음 구조가 필요한 고양이를 다시 구조하라고 항의하였으나 정작 구조되어야 할 고양이는 끝까지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고양이는 어떻게 된 것일까.


 


 


 



5. 황구 찐자는 누가 때렸나?


 



 


대한민국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충격적인 사건, 두 눈이 다 튀어나오도록 맞았던 황구 ‘찐자’, 학대당한 황구가 방영된 후 곧 바로 방송조작에 대한 의혹이 일었다. 어설픈 편집과 수의사의 설정된 연기..


 


 


찐자를 때린 사람은 누구일까. 황구조작설에 대한 여론이 들끓자, 한 시민단체에 의해 결국 방통위에 제소되었지만 동물농장 제작진은 끝내 원본 테잎을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원본 테잎이 없다고 하였다. 원본 테잎이 없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원본 테잎 없이 편집을 했다는 것인가?


 


 


학대범이 달아나는 뒷모습 밖에 못 봤다고 주장하는 제작진이 학대범의 몽타주는 어쩌면 그렇게 천연덕스레 두 피디에게서 동일한 얼굴로 나올 수 있었는지, 과연 학대범이 존재하긴 하는가?


 


 



구조에 참여도 하지 않은 동물자유연대는 방송국과 무슨 깊은 관계인지, 방송이 나가기 전날 제작진들로부터 친절하게도 사진을 넘겨받아 단체의 로고를 박고 홈페이지에 공지하며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펼쳤다. 내일 오전이면 자신들 단체 서버가 다운될 거라면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2부 방송에서 범인의 몽타주 사진을 벽보로 붙이고 다녔다. 그걸로 끝이었다. 구조도, 치료도, 보호도 하지 않는 단체가 찐자를 위한 치료비를 수천만원 모금하고도 정작 찐자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그 모금으로 제 2의 찐자를 구출하고자 하는 노력은 과연 지금 하고 있긴 하는가? 그렇다면 이번 트럭 개들은 아주 쉽게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중요한 건, 황구가 다친 시간으로부터 15시간이나 아무런 응급처치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방송에서는 하루 동안 긴급하게 모든 구조와 치료가 이루어진 것으로 편집했지만 감춰진 진실을 한 기자가 집요하게 밝혀냈다. 그렇게 고통에 찬 비명을 계속 질러대던 황구는 15시간이나 혼자서 방치되고서도 살아남았다, 그런데 찐자의 비명소리를 그토록 오래, 생생하게 카메라에 천천히 담으며 시청자들에게 전달해 주었던 촬영피디들은 찐자가 갑자기 죽었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그냥 돌아왔다고 방통위에 주장했다. 갑자기 죽었다고?


 


 


동물농장 피디들이 그렇게 심각한 상태의 개를 살았는지 죽었는지 만져 보지도 않았다는 것인가? 누워 있던 그 자리 그대로 방치되어 그렇게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던 황구가 갑자기 죽어 보였다고? 숨 쉬는 것만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죽었다는 변명도 납득할 수 없지만, 주인이 있어 응급조치도 할 수 없었다는 제작진이 그 다음 날, 주인이 있는 남의 집 개 사체는 또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친절히 치우러 갔다고 한다.


 


 


그런데 운 좋게 황구가 살아남았던 것이다. 동물농장이 살린 것인가? 아니다. 황구 혼자 살아남은 것이다. 아무도 구해주지 않고 황망히 돌아간 날 밤, 외로운 공포와 싸우며 고통을 이겨낸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개를 제작진은 다음 날 도착해서 또 다시 촬영을 위해 오랜 시간 방치했다. 먼 거리의 여성 수의사를 부르고, 소방서를 부르고, 그 사람들이 도착하고 뛰어오는 장면을 또 찍기 위해 연출을 하고, 카메라를 돌리고, 여성 수의사가 맞지도 않는 처치를 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황구는 또 그대로 누워 있어야 했다.


 


 


 



찐자는 너무 심각하게 이용당했다. 누군가의 배를 불리기 위해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누워 있어야 했다.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 나서 사람들이 다가 왔을 때 찐자는 자신을 구해 줄 것으로 생각했을까.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자신을 그대로 두고 돌아갔을 때 황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누가 황구를 때렸는지는 황구만이 알 것이다.


원본은 영원히 공개하지 않을 것 같다. 찐자는 그렇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게 됐다.


 


 


 


 




6. 아기 고양이 방치와 죽음


 



 



황구 내용이 방영된 지 얼마 안 가서 동물농장 제작진은 또 한 번 구조동물을 심각하게 방치하여 죽이고 말았다. 어미 고양이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 아기는 죽은 어미 곁을 떠나지 못한 채, 서서히 탈수되어 죽어가고 있었는데, 제보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제작진들은 다리를 질 질 끌며 안간힘을 쓰고 버티고 있는 아기 고양이를 발견하고서도 오랜 시간 동안 그대로 두고 촬영만 해댔다. 어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기 고양이는 누군가에 의해 갑자기 멀리 떨어져 있게 되었고 이내 또 어미 곁으로 다리를 끌며 다가오는 영상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아기 고양이는 감동적인 장면연출을 위해 길거리에 그대로 나뒹굴고 있었고, 안간힘을 쓰던 아기 고양이는 길거리에서 구조 후 제대로 된 응급처치도 받아보지 못하고 오랜 시간 방치되는 과정이 그대로 방영됐다. 시청자들은 분노했다. 감동적인 장면은 차치하고 왜 당장 아기 고양이를 들고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았는지에 대해 발을 동동 구르며 본 것이다.


 


 


여성 연예인이 비닐장갑을 끼고 죽어가는 아기 고양이게게 캔을 먹이는 장면은 머리 좋은 시청자들에게는 감동이 아닌 명백한 연출로 보였을 뿐이었다.


 


 


여러 날 동안 동물농장 제작진을 나무라는 글이 올라왔다, 나 또한 인터넷에 올라 온 이 영상을 보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분노했다. 조금만 더 신속하게 이동하여 응급처치를 받게 했다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재수 없게도 동물농장에 제보되어 카메라 세례만 받다가 죽은 것이다. 시청자들의 분노는 대단했지만, 아직까지도 동물농장 측은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7. 허무하게 떠나 보낸 죽어가던 트럭 개들


 


 



 


 



2011년 10월 9일, 트럭에 실려 있는 개장수 트럭은 동물농장식 구조로는 맞지 않는 내용이었다. 동물농장이 그동안 보여 준 구조방식은 집단 구출을 전혀 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고 일반적인 학대의 경우와 다른 개장수들의 문제는 그래서 동물농장이 기피하는 소재였다. 소재가 부족한 것이었을까. 갑자기 이번 회에 개장수 트럭이 나왔다고 하길래 왠 일인가 싶었다.


 


 


인터넷으로 영상을 보았는데 네티즌들이 올린 영상에 트럭 개들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제작팀의 요청’으로 트럭 개들 편은 제외하고 다른 내용만 올리겠다는 영상들이 많이 보였다. 트럭 안의 개들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농장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개들도 있었고, 가정견으로 길러지다가 팔려온 듯한 개들도 있었다. 혹시 유기견들은 아닌가 싶어 동물농장에 나온 사진들을 판독한 후 정부 운영 사이트 APMS를 여러 시간 동안 뒤져 보기도 했다.


 


 


 



구조는 경우에 따라 어려울 수도, 또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무조건 구조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접근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방법은 찾을 수 있다. 시청자들이 트럭 앞에 누워서라도 강경하게 막았어야 하지 않냐고 시청자 게시판에 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찌 되었든 법이 없다면, 사람이 하는 일이니 더 쉬울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도 이번 회의 트럭 개들 구조편은 전혀 구조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다. 현장에 있었으니 더 비참한 상황을 시청자들보다 자세히 볼 수 있었을 것인데 현장에 간 사람들의 분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시청자들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분노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동물보호법만 탓하지 마라. 법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온전치 않을 것이다. 법이 없으니 눈앞의 동물들의 고통은 항상 포기하고 말 것인가? 동물의 고통을 온전히 느껴라. 그래야만 구출할 수 있을 것이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자극적인 방송, 동물이 힘들어 하는 상황을 아무런 조치 없이 몇 시간이고 카메라에 담았을 그 의도된 정성이라면, 그 동물들은 구하고도 남았어야 했다. 때로 법보다 강한 방송국 카메라를 들이대고도 구하지 못했으니 미약한 법 탓만 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비겁하다.


 


 


법이 없어 구조를 못했으니 시청자들이 분노하여 법을 개정해 달라는 소리를 하고 싶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구조를 해 놓고도 원하는 바는 이룰 수 있다.


 



 


-장수동 개지옥 사건-


 



 


2006년 3월, 모든 단체들이 법이 없어 구조가 어렵다고 하였던 장수동 개지옥 개들 100마리를 구조하면서, 절도죄를 무릎 써야 했다. 매일 매일 죽어나가던 개들, 살아 남아도 고기로 팔려갈 수밖에 없는 개들, 일단 눈으로 보았으니 어떤 식으로든 구조하고 싶었다.


 


이번 트럭 개들 편에 나왔던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그 트럭의 개들을 구해 봤자 또 다시 개장수는 그 일을 할 것” 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조 대표는 장수동 개지옥 사건때도  내게 전화를 걸어 와 ” 그런 개농장들은 우리나라 도처에 흔하지 않냐” 란 이야기를 했다. 글쎄… 흔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구해보란 것인가, 구해봐도 별 소용없다는 것인가?


 


 


 결국 동물사랑실천협회는 시민단체로서 절도죄를 무릎 쓰고 집단의 동물들을 강제구출하였고  첫 사례로 남았다. 


 



 



 


 



 


 



 


 


 그 동물들을 구출하여 트럭에 태운 채 광화문 광장으로 달려가 기자회견을 했다. “법을 만들어 달라. 왜 시민단체가 범법을 저질러야 하느냐, 위급한 동물들에게 긴급 피난권과 압수권을 달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명동에서 서명운동도 전개했고 계속 이슈화 시켜 나갔다. 그 해에 결국 피난권이 법에 포함 되었다. 그리고 난 2년 동안이나 경찰과 검찰에 불려 다녀야 했다. 하지만 결국 법은 우리 손을 들어 주었다. 동물보호단체가 구호의 목적으로 구출한 것이지, 영리적인 목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개들을 물어뜯는 고약한 성격의 개들은 1년, 나머지 개들은 2년에서 최대 3년 반까지 보호소에서 넓은 공간을 뛰어 놀며 행복하게 살았다.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여 입양도 불가하였다. 개고기로 죽거나, 잔혹한 상황에서 폐사되는 것보다 행복한 삶을 살다가 편안한 죽음을 주는 것이 더 인도적이지 않을까?


 



 


혹자들은 말한다. 그렇게 죽거나 이렇게 죽거나 죽음은 같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번 트럭 개들을 보고 많은 동물사랑 인들이 깊이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트럭 개들을 구해도 그 많은 개들이 갈 곳이 없었다면, 개고기용이 아닌, 고통과 공포가 없는 편안한 죽음이라도 줄 수 있어야 했다. 구조 후 치료의 기회도, 좋은 공간에서 보호의 기회도, 성격이 좋다면 입양의 기회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허망하게 아무런 손도 쓰지 않고서 도살장으로 끌려가게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얼마 전 공지영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한 <도가니>를 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적당히 불의한 사회와 타협해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소외된 약자에 대한 공갈과 협박, 폭력이 난무한다. 아무도 제대로 구해 줄 수가 없다, 영화에는 마지막까지도 공정한 사회가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부조리한 이 사회를 다시 한 번 깨닫고 공허함만 가득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영화의 여 주인공은 처절한 심정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세상과 싸우는 이유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영화를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분노의 심정이 아니라, 장애인을 포함하여 생물학적 약자인 동물에게는 더하디 더한 부조리한 사회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기에 울었다.


사람에게도 이런 세상인데 동물은 오죽할까…


 


 


 



최근 들어 나와, 내가 속한 단체를 공격하며 허위사실로 매도, 집중적으로 제보하는 일부 안티세력과 기자 몇 명으로 인해 조심스러워서 동물농장의 문제를 과감히 비판하지 못했었다,


지금 내 상황에서의 문제 지적이 오히려 도움이 아닌 역효과로 될까 우려해서였다. 상황을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한 감정적인 사람들로 인해 내가 속한 단체가 또 피해를 입지는 않을까 고민해서였다. 괜한 적을 자꾸 만들어 운신의 폭이 좁아질까 걱정 되서였다.


지금은 좀 조심하자고 생각했다. 나중에라도 소신껏 말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양심은 괴로웠다.


 


 


 



그러나 그러한 내 자신의 모습마저 어느새 불의한 사회와 타협해 가고 있던 것임을 영화 <도가니>를 통해 절감했다. 그래서 또 다시 울었다. 그런 생각을 했던 내 자신이 너무 비참했다. 도가니 속에 나오는 장애 어린이들, 정의를 위해 싸우던 선생님들, 그리고 황구 찐자의 억울하다는 비명소리, 죽어가던 어린 고양이의 탈진한 숨소리, 트럭 개들의 처연한 눈빛에서,   


< 나는 나를 다시 되찾기로 했다. >


 


 


 


 




체게바라는 이렇게 말했다.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의 눈으로


언제나 세상의 모든 불의에 맞서,


그대가 분노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다.”>


 


 


 




세상의 불의는 언제나 존재하며 그것과 동시에 정의도 존재한다.


당신은, 그리고 나는, 어디에 우리의 영혼을 길들여 갈 것인가.


 


 




동물은 사회적, 생물학적 최 약자이다.


최 약자까지 배려해 주는 아름다운 사회는 분명 존재한다.


/ 아름다운 사회와만/ 타협해 살아가자.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정의의 영역은 더욱 빠르게 확장될 것이다.


 


 


 


 


 


 


살려 달라고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철장 사이로 마지막 구조를 바라는 숨을 쉬어 보았으나  아무도 구해주지 않은 채, 그렇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렸습니다.


 


 


 


 





PS. 동물사랑실천협회의 간사들이 트럭 개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문제의 현장을 어렵게 알아내 1박 2일로 탐문조사를 벌였지만 결국 트럭은 찾지 못했습니다. 근처의 주민들은 빙송국에서 다녀간 이후로 최근 10일 동안 트럭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트럭의 행방을 또 다시 목격하신 분은 동물사랑실천협회에 제보 바랍니다.


 


아울러 동물농장의 반복적인 동물 방치, 심각한 오용에 대해 이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동물사랑실천협회 – 박소연 –


 


 


 


 


 


 



 



 



 


트럭은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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