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회원님들은 새 웹사이트의 후원페이지를 이용해주세요!

[스토리펀딩] 사건, 그 후의 이야기 – 4화


 

스토리펀딩 후원하기 ▶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6926

 

죽음의 트럭, 폭염 속에서 죽어가던 어린 생명들

 

6월의 어느 날.

차를 돌릴 수 있나요?”

그날은 20166월의 어느 날로 동물권 단체인 케어의 신입 활동가 두 명과 인천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당시 OBS ‘다큐 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담당 피디였던 나는 동물단체 신입 활동가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있었다. 영종대교를 지나며 바다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데 케어의 박소연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산의 어느 폐차장에 며칠째 트럭이 방치된 상태인데 강아지와 고양이가 그 안에 갇혀 죽어가고 있다는 거였다.

 

전화를 마친 후 활동가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차를 돌릴 수 있나요?”

 

떨리는 목소리, 보통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향하던 곳보다 그곳이 더 급해 보였다. ‘케어의 구조 우선순위 원칙인 위급함에 입각해 목적지를 바꾸었다. 창문 밖으로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그날은 사상 최초로 5월 중순에 폭염 특보가 내려지고 기상청에서 150년 만의 폭염이라고 지칭하였던 2016년 여름, 미치도록 더웠던 6월의 어느 날이었다.

 

> 죽음의 트럭

자유로를 달려 일산의 한 시골마을에 도착했다. 뙤약볕에 달구어진 자동차들로 가득한 폐차장, 그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활동가들과 함께 사람들이 모인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맞닥뜨린 지옥스러운 현장!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1톤 트럭 한 대. 트럭의 짐칸에는 철로 된 케이지가 빈틈없이 높게 실려 있었다. 그리고 강아지와 고양이 새끼 50여 마리가 그 케이지 속에서 배설물을 뒤집어쓴 채 죽어가고 있었다.

 

시뻘겋게 녹이 슨 철망 더미 속에는 신음소리가 가득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듯 자그마한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눈을 감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몇몇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뒤엉켜있었고 어떤 강아지는 탈출하려다 죽은 듯 케이지 사이에 낀 채 늘어져 있었다. 이미 죽었는지 눈이 뒤집힌 채 축 쳐진 강아지들도 여러 마리 보였다. 케이지에 담긴 밥과 물은 언제 주었는지 모를 정도로 심각하게 부패되어 있었다. 발 딛고 계속 서있기도 힘든 철망 속에서 그나마 나았던 걸까, 강아지 한 마리는 더러운 밥그릇 안에 제 몸을 뉘이고는 죽어가고 있었다.

 

 

고양이와 강아지들을 산채로 말려 죽이는 사형장. 제보자의 말에 의하면 이 트럭은 짐칸이 천막으로 덮어져 있는 상태로 며칠 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서 50여 마리가 고통스럽게 살해되고 있을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제보자는 트럭 안에서 들리는 동물들의 신음소리에 신고하였고, 신고 후 천막을 벗겼다. 그리고 목격하게 된 참혹한 광경. 34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갓 태어난 50여 마리의 새끼들이 탈수와 더위로 죽어가고 있었다. 새끼들은 모두 질병에 걸린 듯 눈곱이 껴있었고, 여기저기 상처가 나서 염증이 가득한 새끼들도 많았다. 트럭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도 썩은 냄새가 지독해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제보자는 발견한 후 다급한 마음에 수도에 호스를 연결하여 트럭 위로 물을 뿌려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증기탕을 방불케 하는 트럭의 짐칸에서 몇 날 며칠을 보낸 강아지와 고양이들에게 이 정도 대처는 역부족이었다.

 

갓 태어난 50여 마리의 새끼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절망적인 상황, 더럽고 뜨거운 그곳에서 꺼내기 위해 케이지를 열어보았지만 케이지들의 문들은 잠겨 있거나 여는 부분이 망가뜨려져 있었다. 트럭 주인이 도난을 우려해 일부러 조치한 듯 보였다.

 

일단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생수를 사다 잠겨있는 철장 안의 오물로 오염된 그릇 위에 부어 주었다. 그나마 힘이 있는 동물들은 허겁지겁 목을 축였지만 움직일 수 있는 힘도 없는 듯 숨만 몰아쉬며 그마저도 먹지 못하는 녀석들도 많았다. 구조가 시급한 상황. 케어의 활동가가 케이지 사이를 최대한 벌린 후 팔을 뻗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움직이지 않는 새끼들 몇 마리를 겨우 꺼내서 그늘에 뉘이고 물을 주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눈만 가느다랗게 뜰뿐 받아먹지도 못했다. 제보자는 현장에서 이를 지켜보며 애타는 마음에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협조를 구하고 있었지만 성과가 없어 보였다. 시민들의 제보로 현장을 찾은 경찰과 공무원들은 둘러서서 회의만 할 뿐, 동물은 재산이기 때문에 주인이 오기 전에 적극적인 구조를 하기 힘들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시간만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철망들로 촘촘히 뒤엉켜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이 된 트럭. 구조를 위해 케이지를 파손하는 일이 불가피해 보였다. 과거에 SBS ‘TV 동물농장의 제작피디로 일하며 다양한 동물구조 현장을 취재하였고, 수년간 동물권 단체 케어의 활동을 기록한 경험이 있었던 나는 지금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행동해야 할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트럭의 주인이 재산권 침해로 소송을 건다고 하여도 죽어가는 동물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었다.

 

> 미룰 수 없는 결정

아직 경험이 부족하여 어쩔 줄 몰라하는 케어의 신입 활동가들에게 제안을 하였다.

 

일단 뜯어봅시다!”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구조 활동의 선배가 되기로 한 것이다. 불지옥 같은 케이지 안에 동물들을 11초도 더 둘 수는 없었다. 소송을 각오하고 구출을 시작했다. 이날 실제 구조활동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던 케어의 신입 활동가인 정수리 씨는 강제 구출을 결정하자 적극적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어디에선가 절단기를 찾아와 철망을 자르는 일을 시도했다. 그러나 견고하게 잠긴 케이지들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오랜 노력 끝에 맨 처음으로 꺼낸 것은 죽은 새끼 고양이 두 마리, 굶주리다 죽었는지 솜털같은 무게, 굳은 가죽 너머로 살점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때!

 

다 내려놓고 가요!”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고압적으로 소리치며 다가왔다. 경악스러운 현장과 사람들의 이목 때문이었는지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트럭 주인은 자신이 아니고 따로 있는데, 차 사고 때문에 여기에 주차해두었다고 이야기했다.

 

트럭 안의 새끼들의 생명이 촌각을 다투고 있었기에 그의 등장에도 구조를 계속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다 가져갈 거니까 그대로 놔둬!”라고 소리쳤다. 그가 주인임을 스스로 실토한 것이다.

 

동물보호법 상 이 동물들은 구조대상입니다. 당장 동물병원으로 이송해야 해요!” 제보자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구조활동을 막아섰다. 그리고 이를 기록하는 카메라를 발견하고 더 크게 소리쳤다. “찍지 마! 당신이 뭔데 찍어!” 고함과 함께 케이지에서 간신히 꺼내 그늘에 뉘어 놓았던 강아지들과 이미 죽은 동물의 사체들까지 가져가겠다며 담으려고 했다.

 

살해를 멈추기 위한 전쟁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어린 생명들을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떼죽음을 맞게 한 사람, 그에게서는 조금의 후회도 미안함도 찾을 수 없었다. 트럭의 짐칸 안에서 50여 마리의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모두 죽어 썩지 못하도록 한 우리의 행동에 대한 적대감만이 가득했다. 죽어가는 동물들에게 카메라를 더 가까이 들이대며 소리쳤다.

 

잘한 거 있어요? 뭐 잘한 게 있다고 소리치십니까? 인간으로서 창피합니다!”

 

죄 없는 생명에게 폭력을 휘두른 주인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격이었다. 예상과 달리 강한 맞대응에 당황한 듯 주인은 고성을 멈췄다. 그리고 본인은 트럭의 소유주가 아니라며 한번 더 강조하며 강압적이었던 태도를 버리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마리, 한 마리 구조가 계속되었다. 그러자 그는 자포자기한 듯한 모습으로 사실은 자신이 주인이고 동물들을 다 가져가라며 포기 선언을 하였다.

 

주인의 포기 선언. 그때부터 경찰과 공무원, 현장의 모든 사람들이 구조에 동참, 함께 진행하였다. 이날 구조된 강아지와 고양이는 총 48마리.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케어에서 준비한 봉고차에 한 번에 태워 이송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수였다. 다행히 제보자가 고양시에서 활동하는 캣맘 대표라 고양이들은 그쪽으로 맡기고 케어에서는 개들을 맡아 차량에 태웠다. 이동하면서 수십 마리의 강아지들을 진료하고 치료해줄 병원들을 찾아 전화를 돌렸지만, 쉽지 않았다. 그야말로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돌린 지 약 1시간, 수십 군데 전화한 끝에 드디어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았다. 시시각각 강아지들이 죽어가는 상황, 칼날 위를 달리는 심정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34도를 넘는 기록적인 더위, 거기에 비위생적인 밀폐된 공간에 오랫동안 갇혀있었던 여파로 이날 구조된 48마리의 개와 고양이는 대부분 홍역, 파보,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에 걸려 있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강아지들도 전염병과 합병증의 여파로 전문적인 치료를 진행하였음에도 몇 달 안에 차례차례 죽어갔고, 결국 9마리만이 살아남았다.

 

구조한 동물들의 치료비만 24백만 원, 이후에도 5백여 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케어에서는 아직도 그 비용을 갚아나가는 중이다.

 

트럭 안의 강아지들과 고양이들은 대부분 믹스종들로 모란시장 같은 오일장에서 전시되어 팔리는 용도의 동물들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현행 동물보호법 상 길거리에서 동물을 파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지만 수많은 노점들에서는 여전히 어린 생명들을 판매하고 있다. 비위생적이고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생명을 갉아먹으며 대기 중이었던 어린 생명들은 이 후유증으로 무사히 주인을 만난 후에도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였던 나는 동물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말 못 하는 동물들이 끔찍한 학대로 괴로워하는 현장들을 촬영하게 되었고, 그 이후 보이지 않았던 세상을 발견하였다. 인간의 영리 추구와 편리를 위하여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수많은 동물들의 세상. 어떤 생명에게도 삶은 단 한 번뿐이다. 그날 50여 마리의 개와 고양이를 촬영하며 이들이 겪은 배고픔과 더위, 질병의 고통, 죽음의 공포가 전달되기를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빌었다. 언어로는 전달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아픔이 있다. 이 모든 것을 담기 위해, 알리기 위해 앞으로도 나는 열심히 뛰어다닐 예정이다 .

 

죽음의 트럭에서 생존한 9마리 중 6마리는 입양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3마리는 케어의 입양센터에서 아직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

 

 케어는 지난 15년간 동물들의 위급한 현장에 출동다양한 구조 활동을 진행했습니다때로는 고통받는 생명을 외면할 수 없어 법을 뛰어넘는 구출도 강행했습니다이로 인하여 케어에서는 여러 송사와 벌금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하지만 죽어가는 동물들을 두고 보는 것이야말로 죄라고 생각하며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활동이라고 확신합니다동물들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이 필요합니다법 개정 운동의 노력으로 동물보호법은 조금씩 발전되고 있지만 아직도 트럭 동물들과 같은 긴급한 상황에서조차 죽어가는 동물들은 사유재산주인의 재물로 간주되어 합법적으로 구조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또한 대한민국의 동물보호법은 방치 등의 고통을 동물학대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케어와 같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도 소송에 걸리고 벌금을 내야 하는 이 불합리한 상황들을 개선하려면 압수권이 필요하고 학대자에게서 동물의 소유권을 제한하는 강력한 동물보호법이 필요합니다또한 방치나 정신적 고통 또한 동물학대로 포함되어야만 더 지속적이고 잔인한 동물학대를 막을 수 있습니다.

 

케어 정기후원 (정회원·천사단·힐링센터·대부대모)

후원문의: 02-313-8886 내선 2번, care@fromcare.org

관련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