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관련] 화성의 인류학자

 

 

올리버 색스| 이은선 역| 바다출판사| 2005.10.10

신경인류학자 올리버 색스가 만난 일곱 명의 기묘한 환자들
이 책은 뇌신경 손상으로 인해 기이한 내면세계와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갖게 된 일곱 명의 초상화를 보여준다. 어느 날 갑자기 색맹이 된 화가 I씨, 뇌종양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그레그, 투렛증후군을 가진 외과의사 베넷, 50년 만에 앞을 보게 된 시각장애인 버질,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힌 화가 프랑코, 자폐성 천재 스티븐, 자폐인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이 그들이다. 이 중 템플은 자폐증을 극복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폐인의 모범으로, 그녀가 쓴 자전적인 책 『어느 자폐인 이야기』와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는 국내에 출간 소개되었다.
인지심리학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기면성 뇌염후 증후군 환자들을 소재로 한 영화 <소생Awakenings>(로빈 윌리엄스가 올리버 색스 역을 맡았다)의 원작을 쓰기도 했던 세계적인 신경학자이자 뛰어난 글쟁이인 올리버 색스는 이 책에서 자신이 담당했던 환자들의 임상 사례를 소개한다. 그의 임상 기록은 난해한 의학용어들로 어지러운 서류철과는 거리가 멀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재미와 감동을 전하는 인생스토리다.
자폐증, 기억상실증, 투렛증후군, 전색맹, 측두엽 간질 등의 뇌신경질환과 그로 인한 장애는 흔히 환자와 그 가족들의 인생을 끝장내는 재앙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올리버 색스는 오히려 질병의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한다. 그는 경험을 통해 질병의 이면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병에 걸리면 기본적으로 생활에 한계가 생기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내가 만난 환자들은 거의 모두가 어떤 문제를 만났건 간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딛고, 심지어 자신이 처한 상황의 도움을 받아 삶을 향해 나아갔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색스는 질병이 한 사람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같은 질병이라도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렸느냐에 따라 그 징후가 크게 달라진다고 믿는다. 따라서 병을 치료하려면 병 자체가 아니라 병에 걸린 환자의 총체적인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는 환자를 병원 진찰실로 불러들이는 대신에 그들의 집으로, 직장으로, 여행지로 찾아간다. 색스는 그런 자신을 신경인류학자라고 부른다. 인간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 오지에 사는 소수민족을 찾아가는 인류학자처럼, 질병이라는 창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그는 흰 가운을 벗어던지고 환자들의 삶의 현장을 방문한다.
투렛증후군과 자폐증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각각 1,000명당 1명꼴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 그러나 학자들에 따라서는 미국의 자폐증 인구를 1,000명당 60명의 비율로 추정하기도 한다. 투렛증후군과 자폐증 인구만 대략적으로 살펴보아도 서울 시내를 운행 중인 지하철 한 대(좌석만 540개, 대략 1,000명 탑승으로 볼 때)마다 2~3명이 타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자폐증과 투렛증후군은 전체 뇌신경질환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만큼 뇌신경질환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들의 기묘하고 낯선 세계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그들은 자신을 ‘화성의 인류학자’라고 일컫는다
전색맹인 사람의 눈에는 세상이 흑백 TV처럼 보일까? 그렇게 단순한 차이만은 아닌 듯하다. 교통사고로 전색맹이 된 I씨는 식탁에서 시멘트를 부어놓은 것 같은 음식들에 적응해야 했고, 일출 광경을 마치 핵폭발 순간처럼 느끼며 바라보았다. 토마토케첩과 머스터드소스를 더 이상 시각적으로 구별할 수 없게 되었고, 신호등을 불이 켜지는 위치로 읽어내야 했다. 무엇보다도 화가인 I씨는 화실 벽을 둘러싼 정체불명의 형편없는 그림들을 바라보며 깊은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색 인식과 관련된 뇌의 한구석이 고장 난 것뿐인데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어린 시절 여러 가지 병을 한꺼번에 앓은 후 시력을 상실했던 버질은 50여 년 만에 극적으로 눈을 떴다. 그런데 막상 눈을 뜨고 보니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50여 년 동안 소리와 냄새와 촉각으로 인식했던 세상을 눈으로 다시 익히려니 모든 게 낯설고 불편했다. 그는 시력 회복과 동시에 낯선 세상으로 내몰린 셈이다.
어려서 심각한 자폐증 판정을 받았던 템플 그랜딘은 현재 동물학자로, 가축 시설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공학자로서 매우 유리한 조건을 타고났다. 그의 시각 지각 능력과 기억력은 거의 천재적인 수준이다. 설계하고자 하는 기계를 연필 한 번 들지 않고 머릿속에서 디자인하고, 그것이 완성되면 역시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계는 일반인들도 감탄할 만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러나 템플에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특히 남녀간의 사랑은 그녀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최고 난이도의 수수께끼다. 책을 읽고, 영화와 TV드라마를 보면서 인간의 감정과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번번이 한계를 느낀다. 그럴 때마다 마치 자신이 ‘화성의 인류학자’가 된 듯한 기분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 소개된 뇌신경병 환자들은 일반인과 너무나 다른 일상 경험과 사고방식, 지능과 정서를 지녔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앞을 볼 수 없거나 색을 구별할 수 없고, 강박증이 있거나 이상 행동을 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일반인들이 갖지 못한 비범한 재능이 있고, 그것이 그들을 특별하게 만든다.

 

어느 투렛증후군 환자의 고백,
“강박증이 사라진다면 그건 내 삶이 아니죠”
광기 혹은 질병과 천재의 연관성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흥미를 끈 주제였다. 모든 광인이 천재는 아니지만,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들은 대부분 어딘가 괴팍스러운 구석이 있다. 신경학자들은 광기와 창의력의 관계를 생물학적 인과관계로 설명하고 싶어 한다. 일반인들이 아인슈타인의 학창시절 성적을 가십거리로 삼는 동안에, 그들은 아인슈타인의 삶에서 자폐 성향을 읽어낸다. 신경학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반 고흐, 도스토예프스키, 키에르케고르, 파가니니, 필립 딕에게는 발작성 성격 증후군(일명 도스토예프스키 증후군)이 있었고, 모차르트에게는 투렛증후군, 바르토크,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자폐증이 있었다.

자폐증 전문가 유타 프리스는 “140가지 종류의 파이프, 시가, 담배의 재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일상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냉철한 관찰력과 추리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관습에 매인 경찰이 미처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극단적인 독창성으로 해결하는 능력으로 볼 때 셜록 홈스도 자폐증이 의심된다고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자폐증 환자들은 아인슈타인을 자신들의 동족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창조적인 예술가들은 모조리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앞서 소개한 템플 그랜딘이 그렇듯 자폐증 환자의 10퍼센트는 암산, 암기, 음악 연주, 미술, 언어 등의 분야에서 경이로운 능력을 발휘한다. 백치천재(혹은 서번트savant)라고 불리는 이들은 다른 지적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반면 특정 분야에서만큼은 천재성을 나타낸다. 자폐아이며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십대 소년 스티븐도 서번트다. 그는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원근법을 비롯한 각종 표현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복잡한 건축물과 장엄한 자연 경관의 핵심적인 특징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병적인 천재성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건강한 상태에서 그 미세한 감각들을 기억해내서 분석한 결과, 그것이 조화와 아름다움과 균형의 극치로 결론 내려진다면 비정상적인 강렬함이라 한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실제로 투렛증후군이나 자폐증 환자 가운데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강박증이나 과도한 몰입감 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약물이나 치료법이 있는데도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고통의 이면에 있는 강렬한 쾌감의 원천을 이미 맛보았기 때문이다. 투렛증후군 외과의사 베넷은 단호하게 말한다. “강박증이 사라진다면 그건 내 삶이 아니죠,”

 

질병은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무엇보다도 뇌신경질환이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건 인지상정의 결여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마땅히’라고 기대하는 부분에서 엉뚱한 반응을 보이고, 속마음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을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어머니가 암으로 죽은 열다섯 살짜리 자폐아에게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을 때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 잘 지내요. 저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충격을 덜 받아요.”
그러나 이들에게 없거나 부족한 듯 보이는 소위 인지상정도 다른 인간의 능력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인간 조건이 아닐 수 있다. 앞을 보고 소리를 듣는 기능적 차원의 능력, 읽고 쓰고 말하고 외우는 지적 능력에도 우열이 있듯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 상대방에 대한 배려,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에 장애가 있다면 그것은 결여가 아닌 차이에 해당하는 내용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가 ‘인간답다’라고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조건이 아닌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그레그의 경우, 지금은 50이 넘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20대를 보낸 1960년대만을 기억한다. 그 이후의 기억은 남아 있지 않으며, 새로운 기억의 축적도 불가능하다. 그는 언제나 1960년대에 머물러 있는 영원한 히피 청년이다. 그레그는 자신이 장님이 된 사실을 알지 못하고, 병원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5분전에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심지어 대화를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레그의 무의식은 그 모든 일을 알고 있는 듯 어떤 사건에 얽힌 사람과 사물에 대해 호불호의 감정을 표현한다.
올리버 색스는 자폐증 화가 제시 파크를 찾아갔을 때 딸에게 엄청난 애정을 표현하는 그녀의 부모를 보고 가슴 뭉클해 하며 이렇게 물었었다. “따님을 얼마나 아끼시는지 피부로 느껴지던데 따님도 부모님을 잘 따르나요?”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의 능력이 닿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우리를 사랑하고 있을 겁니다.”
일반적인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그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막다른 골목에 이를지 모른다. 왜냐하면 뇌신경질환이란 그런 방식을 사용할 능력이 고장 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가 끝은 아니다. 하나의 길이 막히면 다른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 생명의 본능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방식은 분명 엉뚱하고 기발한 전혀 다른 방식일 것이다. [인터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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