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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인간의 동반자

제임스 서펠| 윤영애 역| 들녘| 2003.08.31

‘애완동물’이라는 흔하지만 특별한 ‘현상’에 대해 비로소 던져진 근원적인 질문들

“솔직히 못난 인간보다 훨씬 낫지. 개들은 꾸밈이 없잖아. 배신하지도 않고…”

“뭐든지 지나치면 좋지 않아요. 애견을 자신과 동일시해 사치를 일삼는 부유층이나 애견만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개를 키울 자격이 없어요.”

인터넷 한겨레 8월 14일자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서

애견인구 7백만에 애완견은 3백만 마리를 돌파한 ‘애견愛犬의 나라’이자 보양에서 미식까지 폭넓은 저변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식견食犬의 나라’. 1인당 GNP 1만 달러 시대를 웅변이라도 하듯 애견문화는 이미 보신문화와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룰 정도로 급성장했다.

우리 나라가 이른바 애견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징후는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퇴계로는 애견의 거리가 되었고, 관공서, 은행, 공원 등에서는 애완동물 출입을 두고 논란이 일어나며, 애완견 장례 전문 사이트는 하루 평균 10여 건의 애완견 장례식을 대행하면서 성업중이다. 정책결정자들의 관심은 이제 보신탕문화의 은폐에서 애완동물산업의 보호로 옮겨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인터넷을 보자. 징병제, 남녀차별, 보혁갈등 못지않게 각종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는 오래된 주제 하나는 바로 여전히 식을 줄 모르는 ‘개고기 논쟁’과 더불어 애완동물 애호가들과 애견지상주의 비판론자들의 첨예한 대립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근원적인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기호와 성향의 차이를 다투기 전에 그런 ‘취향’의 기원 또는 본질이 무엇인지 먼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즉 바람직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설정하는 작업이 선행된다면 소모적인 논쟁을 그치고 합리적인 사회적 대안을 도출하는 데 머리를 맞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애완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진지한 성찰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때늦은 감마저 있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서구사회 역시 최근에야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그 여명기의 성과가 바로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애완동물은 과연 무엇인가? 비뚤어진 사랑의 배출구인가, 아니면 인간의 감정적 욕구를 채워주는 네 발 달린 친구인가? 인간은 왜 개와 고양이는 애정으로 보살피면서 돼지나 닭은 가혹하게 취급하는가? 도대체 인간은 동물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이 책은 애완과 사육, 연민과 착취, 학대와 수간獸姦 등 인간과 동물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모든 관계의 역사와 의미를 살피면서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진지함과 풍성함을 더하고자 한다.

동물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과 의미

이성을 가진 존재란 얼마나 편리한가! 하고자 하는 어떤 일에든 이유를 갖다 붙이거나 만들어낼 수 있으니.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

동물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는 참으로 다양하고 변덕스럽다. 인도에서는 소를 신성시하여 도살하거나 먹는 일을 금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굶어죽어도 소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 없이 유유자적하며 번식한다.

하지만 생활수준이 높은 유럽과 북미 지역 사람들에게 소는 걸어다니는 우유공장이며 식량 그 자체다. 그러면서도 애완용 개에 대해서는 인도의 신성한 소에 비견할 만한 대우를 하면서 가까운 친구로 여기고 영양가 있는 먹이를 준다.

인류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이런 문화적 차이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논의해왔는데, 이들의 주장은 점차 두 극단으로 갈라졌다. 이 양 극단의 한편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실리주의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나 돼지, 개의 고기를 먹는 행위를 금지하는 데도 그에 합당한 경제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리주의적 접근방법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특정 동물의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사회적, 심리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감정적 또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둘 중 어떤 주장도 본질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이 책에서 저자는 ‘음식문화의 금기’라는 주제는 다루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사람과 동물의 관계에서도 감정과 실리는 둘 다 고려할 가치가 있는 측면인데 두 측면이 서로 상충되기도 쉽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충돌을 처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색해온 방법들을 알아보는 것이 이 책의 기본 목적이다.

이 책은 공장에서 사육되는 가축들에 대한 냉정하고 공리주의적인 태도가 애완동물과의 애정 어리고 인정스러운 관계와 공존하는 사회의 모순을 논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이유에 대한 통념이 잘못된 경우가 많다고 주장하고, 동물을 인격화하여 친구처럼 보살피는 것이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특성이며 감정적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동물이나 자연을 애정과 동정심으로 대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용한 동물을 냉혹하게 취급하는 것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애완동물 키우기 같은 ‘인간 중심적’이지 않은 활동을 부정하고 깔보는 견해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동반자로서의 동물을 인간의 지위로 격상시킬 때, 그들과 공감대를 가지고 그들이 우리와 닮았음을 인정할 때 인간의 도덕적 우월성은 한낱 착각이며 오늘날 우리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위험하고 독선적인 신화임이 분명해진다고 말한다.

애완동물이 동물 그리고 자연세계와의 생물학적 유사성을 인간에게 더욱 환기함으로써 인간 중심주의라는 독선에서 벗어나는 길을 이끌어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애완동물과 인간, 그 기묘하지만 끈끈한 동거에 관하여

“왕의 소유물을 훔치는 짓을 그만두지 못하겠는가? 왕이 개를 좀 키우면 안 될 일이 무엇인가? 그 개의 처소는 몇몇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아무도 개 대신 머물고 싶어하지는 않을 유일한 장소일 뿐이니라.”

영국의 왕 찰스 2세가 도둑맞은 애완견을 돌려줄 것을 호소한 신문 광고

애견문화와 보신탕문화가 혼재해 있는 우리 사회. 동물 다큐멘터리와 동물행태학 서적에 쏟아지는 열렬한 관심. 하지만 이런 양상의 근원을 밝히는 ‘인간-동물 교섭의 문화사’를 제대로 다룬 책은 없었다. 이 책은 ‘왜 우리는 동물에게 애정을 쏟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저자는 집약적 목축업부터 수간에 이르기까지 동물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현상을 두루 살피면서 인류학의 방법론과 계보학의 태도로 ‘동물’이라는 현상을 분석한다. 그러면서 쉽고 간결한 문체로 동물에 대한 일반 독자들의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동시에 동물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의 의미를 인류의 운명과 연관지어 탁월하게 설명한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새로운 학문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는 인류동물학(Anthropozoology, 인간과 동물의 상호작용을 과학적으로 밝히는 학문)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애완동물은 동물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적 모순을 드러내는 증거물이었지만, 문명에 경도된 인류를 오만과 편견에서 풍부한 감정과 겸손한 성찰의 길로 이끌어줄 동반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인간이 동물이라는 타자他者를 더러는 애정으로 길들이고, 더러는 비정하게 착취하는 모순된 심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해왔던 인간 중심의 가치관과 기묘한 이중적 기준 등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매혹적인 논조로 파헤친다. 인류동물학의 고전이 된 이 사려 깊은 연구는 오랜 역사를 거치며 이어져온 애완동물 기르기를 진지하게 고찰함으로써 인간과 동물,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인터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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