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껌벙이

 

 

[한겨레] 내가 읽은 한권의 책 / 집을 나간 껌벙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슬프다. 너나할 것 없이 시간 속에서 스러져갈 생명들이기에 그렇다. 때로는 새로운 인연을 갖는 것이 두렵다. 만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지게 돼 있으니까. 그런 까닭인지,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애완동물 기르는 걸 피하게 됐다. 그러나 어린이문학에는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이 유난히 많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 있는 주인공은 개일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길들여져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 온 탓에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의 친밀도가 정말 남다르다.
<집을 나간 껌벙이>(이지현 글, 심은숙 그림, 계림북스쿨)는 털빛이 새카만 잡종 강아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껌벙이는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엄마와 헤어져, 산 너머 재원이네 집에서 살게 된다. 젖을 떼고 밥을 먹게 되면 사람들은 강아지를 다른 곳으로 보낸다. 하지만 한번쯤은 이 어린 것이 낯선 집에 혼자 뚝 떨어져 맞게 될 첫날 밤의 외로움을 떠올려 보시라. 엄마의 따스한 품이 그립고 함께 뛰놀던 형제들이 보고 싶어서, 껌벙이는 어두운 뒷산을 바라보며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는 데에서 시작된다. 새 주인집의 아들인 재원이는 껌벙이를 무척 좋아하지만, 아직까지는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른다. 게다가 한창 짓궂고 장난이 심할 나이라서 이따금 껌벙이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견디기 힘들 만큼 그리움이 커진 어느 날, 껌벙이는 엄마에게 가려고 집을 나선다. 길은 멀고도 험하다. 산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산, 산등성이를 오른다 싶었는데 여전히 깊은 골짜기. 달빛이 서쪽 하늘로 기울 무렵, 껌벙이는 마침내 엄마의 품으로 파고든다.

달콤하고 곤한 잠을 길게 잤지만, 이런 행복이 계속될 수는 없다. 전 주인의 전화를 받고 재원이네 가족이 껌벙이를 데리러 온 것이다.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은 껌벙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다. 엄마는 길 위에 오도카니 서서 떠나가는 껌벙이를 바라보고, 재원이의 가슴에 안긴 껌벙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힌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이 장면에서 시간의 또 다른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 지난번 엄마 곁을 떠날 때는 붉은 엉겅퀴 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여름철이었는데, 어느덧 하늘을 향해 억새가 하얀 손을 흔드는 가을이 돼 있다. 순하고 여린 강아지 껌벙이도 그만큼 의젓하게 성장한 것이다.

이 작품은 껌벙이가 꼬박 하루 동안 겪은 사건들에 집중돼 있다. 그런데 이야기 중심축의 앞뒤로 맞물리는 에피소드의 구성이 자연스럽고 심리 묘사가 섬세해, 어린 강아지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조곤조곤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정말로 강아지들이 일상에서 느낄 것 같은 고민들이 실감나게 그려지면서 가슴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사실 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작가가 자기 얘기 늘어놓기에만 급급한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가. 조심조심 어루만지듯 글의 분위기를 담아낸 그림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토록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쓸쓸한 표정의 강아지 그림을 좀처럼 본 적이 없다.

오석균/도서출판 산하 주간 mitba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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