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죽음의 향연

 

 

 

‘채식’하면 안전할까…광우병의 모든 것 알려주마
[화제의 책] <죽음의 향연> 통해 본 광우병의 공포

“시간이 흐를수록 비키의 상태는 악화되었고, 그는 아무데서나 넘어지기 시작했어요. 꼭 그 소들이 넘어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 아이는 계속 물었어요. ‘제가 왜 이러는 걸까요, 할머니?’ (…) 그녀는 결국 눈이 멀었어요. 움직일 수가 없어요. 침이나 음식물을 삼킬 수도 없고요. 이런 모습을 매일 본다는 것은 생지옥이에요.” (인간광우병으로 손녀를 잃은 할머니)

한국방송(KBS)의 이 29일 미국산 쇠고기 생산 실태와 광우병의 위험을 고발하는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을 방영한 데 이어, 30일에는 2003년 12월 이후 2년 11개월 만에 미국산 쇠고기가 전격 반입된다. 정부는 ‘철저한 검역’을 약속했지만 일반 소비자의 광우병에 대한 우려는 방송 이후 더욱 높아졌다.

홈페이지의 게시판에는 우유, 버터를 비롯한 미국산 쇠고기로 만드는 각종 가공식품의 안전성을 묻는 소비자의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 나온 리처드 로즈의 <죽음의 향연>(안정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유의미하다.

이 책은 종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광우병과 같은 ‘전염성 해면상 뇌증(TSE)’이 인간을 어떻게 습격하는지 한 편의 공포소설처럼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11년간 채식했는데…인간광우병으로 생명 잃어

▲ 11년간 채식했지만 결국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한
크레어 톰킨스. ⓒBBC
1997년 8월, 이미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간광우병으로 24세의 여성, 크레어 톰킨스가 생명을 잃었다.

그의 죽음은 당혹스러웠다. 그는 11년 동안 육류를 섭취한 적이 없는 채식주의자였다. 1986년 이전에 그가 먹은 쇠고기가 문제였을까?

그 때는 아주 극소수의 소만이 광우병 증상을 보이던 시점이었다.

인간광우병처럼 동물의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려 죽는 전염성 해면상 뇌증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칼턴 가이듀섹은 이렇게 설명한다. “(소뿐만 아니라) 닭도 (광우병 소의 뼈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고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닭에게 그런 것을 먹이면 배설물로 빠져나오지. 그리고 닭똥은 채소의 비료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네.” 채식주의자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에서도 지적된 이른바 ‘교차 감염’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돼지, 닭에게 충분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 소의 뼈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인다. 이렇게 비육한 돼지, 닭을 도축한 후, 다시 그 뼈를 갈아 만든 사료를 소에게 먹이게 되면 결과적으로 광우병이 계속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물론 현재까지 돼지에게서는 광우병과 같은 전염성 해면상 뇌증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광돈병’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이듀섹은 말한다. “돼지에게서 질병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돼지를 7~8년씩 살려두지 않기 때문이야. 돼지는 기껏해야 생후 2~3년이면 도살되지.”

실제로 실험실에서 돼지에게 다른 종의 해면상 뇌증 인자를 주입하고 7~8년 이상 키우면 돼지 역시 어김없이 광우병 증상을 나타내다 죽었다. 광돈병에 걸린 돼지는 단지 잠복기 상태이기 때문에 안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문제는 더 크다. 수술할 때 쓰이는 봉합사는 바로 돼지의 장(腸)을 이용해 만들기 때문이다.

우유, 버터 역시 안전하지 않다. 1995년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한 18세의 남학생은 8년 동안 매년 고모의 농장을 방문해 살균 처리하지 않은 생우유를 마셨던 것으로 확인됐다. 비록 그 농장의 소 떼에서는 1995년 당시까지는 광우병이 보고돼지 않았지만 말이다. 광우병 잠복기의 소에서 나온 우유가 그 남학생의 목숨을 앗아갔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전 세계 누비는 인간광우병 ‘좀비’들

소에게서 나타나는 광우병 증가세가 주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광우병의 위험성은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 9일 영국에서는 수혈로 인한 3번째 인간광우병 전염 사례가 확인됐다. 적혈구, 혈장, 혈소판 등이 모두 인간광우병의 매개가 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가디언>은 3월 27일 “인간광우병이 수혈이나 외과 수술 장비를 통해 과거에 알려진 것보다 더 쉽게 전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경고했다.

의학 잡지 <랜싯>의 경고는 더 섬뜩하다. 에든버러 국립 광우병 감시 연구소의 과학자는 <랜싯>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아마도 1만4000명 정도가 아무런 증상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인간광우병을 유발하는 변형 프리온을 보유하고 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마치 자신이 위험한 존재인지 모르는 ‘좀비’와 같은 사람이 전 세계에 퍼져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한국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2000년대 이후 국내에서는 인간광우병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여러 명 있었다. 2001년 3월 서울대병원은 한 36세 환자를 인간광우병 환자로 판명했다. 그러나 유족의 반대로 부검을 못해서 최종 판단은 유보되었다. 즉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한국도 인간광우병 발생국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좀 더 철저한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광우병 위험이 큰 미국산 쇠고기를 전격 수입하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은 위험한 쇠고기를 국력을 앞세워 국외로 수출한다는 눈총을 받자 최근에는 소에 대한 광우병 진단 수준을 10분의 1로 낮추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이 미국의 광우병 실태가 은폐됐다고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죽음의 향연>(리처드 로즈 지음, 안정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 ⓒ프레시안 한국 정부, 10년 전 영국 정부 ‘판박이’

 

이 책은 1990년대 중반, 인간광우병으로 공황 상태에 빠진 영국에서 정부가 얼마나 사태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했는지 냉소적으로 묘사한다. 영국 정부는 광우병 소로부터 전염된 것이 분명한 15세 여학생 빅토리아 리머의 가족을 찾아가 이렇게 경고한다. “경제를 생각하셔야지요. 유럽 공동시장을 생각해 보세요.” 당시까지 영국 정부는 광우병 소가 인간에게 인간광우병을 유발할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과학자의 자문을 받은 한 영국 정부의 보고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최선의 방법은 향후 20년 이상 동안 영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간광우병 사례를 모니터하는 것입니다.” 한 양심적인 과학자는 이렇게 비판했다. “그들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내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는지 지켜보자’고 말하고 있다.”
결국 영국 정부는 광우병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지 10년이 지난, 1996년 공식적으로 광우병이 인간광우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나마 발표도 비정상적으로 이뤄졌다. 보수당 내각 관료들이 모두 ‘쉬쉬’하며 발표를 주저하자, 보건부 장관 스티븐 도럴이 하원에서 연설을 하던 중 관련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런 영국의 경험을 보자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금 한국 정부의 모습과 똑같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위해서 수년간의 ‘통상 현안’이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쉽게 허락한 한국의 농림부는 ‘유럽 공동시장’ 운운한 영국 정부와 다르지 않다. 무조건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강변하는 모양도 어쩌면 그리 똑같은가?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

불행히도 현재까지는 인간광우병에 걸리면 죽을 수밖에 없다. 인간광우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변형 프리온은 고온, 고압으로도 제거되지 않는다. 음식물 속에 숨어 있는 이 질병은 감염 후에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나서 뇌 손상이 진행되기 전에는 근본적으로 확인도 불가능하다.

오죽하면 가이듀섹은 장미와 같은 꽃을 키울 때 흔히 사용하는 동물성 비료의 사용도 자제할 것을 경고했겠는가. 실제로 광우병이 영국에서 한창 확산될 때 영국왕립원예협회는 정원사들에게 이렇게 공지했다. “장미, 관목에 혈액과 뼈를 원료로 하는 비료를 줄 때에는 장갑, 방진 마스크를 꼭 착용하시오.”

영국의 한 과학자는 1990년대 후반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백 명 정도에서 그칠 수도 있지만 유럽 전체에 번져서 성서에 나오는 수준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수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대재앙의 가능성을 마주보아야 한다. (…)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리는 해답을 찾아야 한다.”

 

리처드 로즈

리처드 로즈는 1988년 퓰리처 상을 받은 역작 <원자폭탄 만들기>(문신행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의 저자다. 이 책에서 그는 원자폭탄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의 비극’으로 귀결됐는지를 추적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신화의 허구성을 까발렸다.

로즈는 이 책에서도 훌륭한 과학 저술가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특히 전염성 해면상 뇌증의 원인이 단백질인지, 바이러스인지에 대한 과학자의 논쟁을 기술한 부분은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대재앙이 될지 모르는 전염병의 위험성을 폭로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로즈의 이 책은 이 시대 과학 담당 저술가, 기자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전범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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